AI로 똑똑하게, MZ와 유연하게…정기선 취임 3주년, HD현대 확 바뀌었다 [그 회사 어때?]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4에서 기조 연설자로 등장, 육상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HD현대 제공]

[헤럴드경제=한영대·김은희 기자] 25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 연구개발(R&D) 센터(GRC) 아산홀에는 이른 오전부터 임직원들로 북적였다. 이날 오전 9시 20분부터 진행되는 ‘제3회 HD현대&서울대(SNU) AI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아산홀에 마련된 130여개 좌석은 행사 시작 10분전에 모두 만석이 됐다.

최우진(가명) HD한국조선해양 선임은 “최근 사내에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권고가 많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AI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쌓고자 참석했다”고 말했다.

HD현대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HD현대&서울대 AI 포럼은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기획한 행사다. 최신 AI 트렌드를 파악하고, 계열사 간 AI 사업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날 포럼은 단순히 발표 형식으로만 진행되지 않았다. HD현대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현장에서 AI를 적용한 사례를 소개하자, 직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AI 서비스 자체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실제 현장 적용시 발생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빗발쳤다.

HD현대중공업의 ‘AI를 활용한 예측 가능한 안전’ 발표 세션에서 한 참석자는 “근로자들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정보 제공 등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떻게 문제점을 해결했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25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 R&D 센터 아산홀에서 ‘제3회 HD현대&서울대(SNU) AI 포럼’이 열렸다. 한영대 기자

이날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AI 기술은 전남 영암 HD현대삼호중공업 사업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AI 에이전트’다. 작업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번역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번역 프로그램은 전문 용어를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해 개발됐다. HD현대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4200개 작업 지시 문장 등을 수집했다.

이성배 HD현대건설기계 상무는 건설기계 수요 예측에 AI를 도입한 배경에 대해 “건설기계 전방 산업인 건설 경기의 경우 사이클이 3~5년마다 온다”며 “이때 수요를 잘못 예측할 시 회사가 정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옥 HD현대 인공지능최고책임자(CAIO) 상무는 “HD현대의 AI 전략은 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하는 것”이라며 “HD현대는 선박 건조가 이뤄지는 야드와 공장 중심으로 AI를 선제적으로 도입,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5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 R&D 센터 아산홀에서 열린 ‘제3회 HD현대&서울대(SNU) AI 포럼’. 한영대 기자
HD현대 ‘AI 기업’으로 거듭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CES 2024에서 공개한 AI 기반 해양 데이터 솔루션 ‘오션와이즈’ 화면 모습. [HD한국조선해양 제공]

1982년생인 정 부회장은 이달 대표이사 취임 3주년을 맞았다. 2021년 10월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내정됐고, 2년 뒤인 지난해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HD현대의 가장 큰 변화는 AI 도입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HD현대 핵심 먹거리인 조선과 건설기계 사업 등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AI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HD현대는 AI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1월 AI 전문 조직인 AI 센터를 출범했다. 구글과 독일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이날 진행된 HD현대&서울대 AI 포럼도 계열사들끼리 AI 사업 성과를 공유함과 동시에 개선점을 찾기 위해 열렸다.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한 조선업 맞춤형 AI 번역 서비스 AI 에이전트의 구동 모습. [HD한국조선해양 제공]

전사적으로 역량을 집중한 결과 HD현대의 AI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날 포럼에서 “(HD현대는) AI가 우리 일상에 깊게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해 왔고, 그간 구상 단계에만 머물렀던 기술과 서비스들이 실제 (업무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HD현대마린솔루션이 개발한 ‘오션와이즈’다. 오션와이즈는 AI 기술에 기반해 선박 운항 경로 및 기상 변화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예측하는 솔루션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올해 2월 포스코에 오션와이즈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정 부회장은 “오션와이즈를 활용할 시 의미 있는 수준의 연료 절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가상 공간에 현실 조선소를 3D 모델로 구현, 조선소 현장 정보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가시화환 ‘눈에 보이는 조선소’ 프로젝트도 완료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2019년 선보인 건설기계 무인 자동화 솔루션 ‘콘셉트-X’ 성능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 1월에 열린 CES 2024에서 HD현대가 전시한 무인 굴착기. 한영대 기자
임신·출산·육아 복지에 ‘진심’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사내 어린이집에 자녀를 등원시키는 여성 직원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HD현대 제공]

HD현대의 변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2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HD현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 기존 ‘중공업’에서 나오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젊고 유연한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22년 12월 열린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며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 부회장은 ‘사람이 미래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판단 아래 임직원의 일·가정 균형이 지속가능한 기업의 핵심과제라고 보고 있다. HD현대가 추구하는 일하고 싶은 회사도 결국 임직원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에서 출발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젊은 인재,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포용하기 위한 변화이기도 하다. 국내외 주요 기업이 미래 사업에 필요한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그들이 원하는 회사가 먼저 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선택근로제, 유연근무제, 자율좌석제를 시행하고 워케이션(휴가지에서 일을 병행하는 근무방식)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가 HD한국조선해양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HD현대 인스타그램 캡처]

그중에서도 임신·출산·육아 관련 지원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젊은 부모 임직원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게 가장 필요한 복지라고 봤다. 산업 특성 상 낮은 여성 임직원 비율을 높임으로써 조직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여 기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도 있다.

HD현대는 임직원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사내 어린이집 ‘드림보트’를 운영하고 있다. 드림보트를 이용하기 어려운 직원에게는 초등학교 입학 전 3년간, 자녀 1인당 총 1800만원의 유치원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임신·출산 때 500만원씩 총 1000만원의 축하금을 주고 있으며 법정 출산휴가 90일 외에 별도로 특별 출산휴가를 1개월 더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만 6~8세 자녀가 있는 직원을 위한 최대 6개월의 자녀 돌봄 휴직 제도를 두고 있다. 법정 육아휴직과 별개로 주어지는 자녀 돌봄 휴직은 두 아이의 아빠인 정 부회장이 여성 직원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도중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가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에 공감해 만든 지원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21년 9.6%였던 HD현대의 여성 채용 비율은 지난해 16.8%까지 늘었다. HD현대는 여성 채용 비율을 오는 2030년 3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HD현대는 가족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조성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7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제13회 인구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HD현대오일뱅크가 공개한 디지털 광고 ‘오일전사’ 섬네일(미리보기) 장면. [유튜브 캡처]

HD현대의 이색 디지털 광고는 그룹의 달라진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해 5월 지구에 침투한 ‘못(한다) 바이러스’를 고(故) 정주영 창업주가 강조한 ‘임자, 해봤어?’ 정신으로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광고 영상을 제작했다. 같은 해 9월에는 HD현대사이트솔루션이 시골 농장에서 정성껏 굴착기를 키워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낸다는 ‘내 땅강아지 대발이’를 휴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올해 8월 기름을 의인화한 오일전사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은 디지털 광고를 선보였다. 오일전사의 경우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만 1350만건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오일전사 콘셉트는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공고로도 활용됐는데 MZ세대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성공적 사업 다각화에 재계 순위 8위로 상승
권오갑(왼쪽부터) HD현대 회장과 여인표 HD현대마린엔진 생산부문 상무, 이상균 HD현대중공업사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난달 HD현대마린엔진 생산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HD현대 제공]

정 부회장은 그룹 핵심 사업을 조선해양, 건설기계, 에너지를 3대 축으로 다각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특히 친환경·디지털 대전환을 목표로 미래 사업을 추진한 결과 올해 재계 순위를 8위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일단 조선해양 부문에서는 밸류체인 확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놨다. 올해 5월 해양 산업 분야 종합 솔루션 기업인 HD현대마린솔루션을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지난 7월에는 STX중공업 인수를 마무리 짓고 HD현대마린엔진으로 공식 출범했다. 선박의 심장인 엔진 기술 고도화부터 선박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솔루션 제공까지 배와 관련한 밸류체인을 보다 공고히 하게 됐다.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 스마트 공장에서 일부 변압기들이 조립 단계를 거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건설기계업, 에너지업에서의 글로벌 비전을 분명히 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정 부회장은 올해 초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24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라 건설 산업의 미래 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HD현대의 확장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바다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에 이어 물리적 공간인 사이트를 확장한 ‘사이트(Xite) 트랜스포메이션’을 미래 청사진으로 제시하며 건설 산업의 근원적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에너지 부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전력기기·에너지솔루션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역대 최대 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순항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HD현대오일뱅크 상장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안정적인 정유 사업 수익성을 바탕으로 블루수소, 화이트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등의 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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