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장례식장 같아”…거리 뒤덮은 근조화환에 주민 몸살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늘어선 근조 화환 [독자 제공]

“SM 사옥이 오고 나서 동네가 가끔 장례식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20년 넘게 살았다는 김승진(35) 씨의 말이다. 김 씨는 “동네 분위기가 SM 사옥이 들어온 처음에야 좋았지, 이제는 무슨 문제만 터지면 시위 장소로 변하는 것 같다”라며 “요 근래 돌아다니는 ‘트럭 시위’는 어떤 트럭은 특정 아이돌 ‘나가라’라는 내용과 ‘돌아오라’는 내용이더라”라며 한숨 쉬었다.

28일 성동구 SM 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은 근조화환, 축하화환 등이 줄지어 서있었고 SM 소속 아이돌 그룹 멤버 홍승한(21) 씨의 복귀를 원한다는 내용의 트럭이 돌아다녔다. 성수동에 놀러 온 시민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연신 사진을 찍었고,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지나쳤다.

근조화환 시위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절 공직 사회, 기업 등을 비판할 때부터 시작됐다. 보통 ‘성난 민심’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지만, 이 같은 시위는 지난 5월부터 K팝 팬들 사이에서 ‘통상적 항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이브 사옥이 있는 서울 용산구 역시 걸핏하면 ‘근조화환’ 시위가 벌어져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5월 하이브 소속 그룹 BTS 팬들은 하이브가 BTS의 악성 루머에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조화환을 보내 항의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8월에는 음주운전 혐의로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던 BTS 소속 슈가의 탈퇴를 요구하는 근조화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용산구 하이브 소속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정은(28) 씨는 “K-팝 팬덤의 불만은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가끔 밤에 근처를 지날때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라며 “점점 팬덤의 시위가 다양해 지면서 거리 미관도 해치는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주형(26) 씨는 “하이브 소속 연예인들에 무슨 문제가 터졌다 하면 거리에 젊은 팬들, 외국인들로 가득해서 돌아다니기 불편할 때가 있다”라며 “트럭이야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굳이 수백개의 근조화환까지 보낼 필요가 있느냐”라고 했다.

K-팝 팬덤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소속사의 잘못된 결정에 유감을 표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주장과, 팬심을 앞세워 연예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K-팝 팬덤으로 20년을 보낸 A씨는 “이제는 팬들이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에 맞는 대우를 소속사가 해줄 필요가 있다”라며 “이 정도는 팬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이에 반대하는 13년차 K-팝 팬 B씨는 “저항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근조화환 1000개를 보내는 등의 행태는 주위에 민폐를 줄 수 있다고 본다”라며 “거리를 뒤덮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팬덤이 결집해서 목소리를 내고 여론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돈을 지불하고, 그룹의 성장에 참여해 온게 사실”이라며 “이런 배경에서 팬들 다수는 상업화된 K-팝에서 적극적 개입을 넘어 이정도 보상(여론화)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라고 설명했다.

김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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