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이시바의 오판…제1야당 노다의 부활 [이슈&뷰]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단독은 물론 공명당과의 연립으로도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로써 2012년 정권 재탈환 후 12년간 지켜온 자민당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이달 초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는 ‘자충수’가 됐다. 지난해 ‘비자금 스캔들’로 민심이 돌아선 결과지만 고물가, 실질임금 후진 등 경제 악화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이시바의 오판이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12년 전 1년 3개월의 단명 총리로 끝났던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관련기사 3면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민당은 191석을 차지해 단독 과반에 실패했다. 연립 정당인 공명당 의석 수 24석을 합치면 215석으로 중의원 465석의 과반(233석)에 미치지 못했다. 두 정당의 선거전 의석수는 각각 247석, 32석으로 총 279석이었다. 반면 입헌민주당은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50석이나 늘렸다. 다른 야당 중에는 국민민주당이 7석에서 28석으로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던 이시바 총리는 책임론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8일 만에 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거를 실시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시일 내로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선포했다.

당초 이시바 총리는 선거를 앞당기는 것이 비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자민당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선거 시작 후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12명을 공천에 배제한 것을 두고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공천을 받지 못한 출마자가 자민당에게 활동비 2000만엔을 지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시바 총리에 부담을 줬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자민당의 약점인 비자금 스캔들 문제를 집요하게 비판하며 정권심판론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입헌민주당이 보수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운용해 중도 성향 유권자를 끌어온 것이 선거 성공의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내에서 가장 보수 성향으로 꼽히는 노다 대표는 이번엔 3년 전 총선 때와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3년 전엔 지역구마다 일본공산당과 후보를 단일화했다가 강경 좌파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의 외면에 참패했지만 이번엔 선거 협력을 하지 않고 ‘일본공산당과 거리 두기’를 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낀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노다가 이끄는 ‘우클릭 입헌민주당’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다는 지난달 대표로 취임하며 ‘정권교체’를 목표로 내걸었다. 의석수 98석에 불과한 입헌민주당으로서는 무리라는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도 ‘입헌민주당의 길’을 고집해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경제 부진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평가된다. 교도통신이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새 내각의 우선 과제(복수응답)로 ‘경기·고용·물가 대책’을 꼽았으며 이어 ‘연금·사회보장’(29.4%), ‘육아·저출산’(22.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자민당·공명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기저에는 장기간 지속된 경제 부진과 고물가, 실질 임금 감소로 팍팍한 민생의 불만이 깔려 있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정치문제보다 먹고사는데 집중돼 있는데 이시바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아시아판 나토 창설 등의 공약이 먹힐 리가 만무한 것이다.

선거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시바 총리는 사퇴보다는 야당에 연정을 제의하며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측근에 사임하지 않고 정권 유지를 위한 여당의 협력을 호소할 의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전날 NHK 인터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뒤 “앞으로 우리가 내건 정책 실현을 위한 노력을 최대한으로 해야 한다”며 사임에 사실상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자민당은 특히 보수 성향의 무소속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연정의 손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고 요미우리는 전망했다.

과거1990년대 후반에도 자민당은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을 때도 무소속 당선자들을 포섭해 정권을 유지했다. 김빛나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