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본인 없이 정신장애 자녀만 있는 아파트에서 실시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녀의 정신과 치료 내역 등을 볼 때 참여능력이 없으므로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압수수색 시 주거주의 참여능력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최초의 판결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은 A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원심(2심)은 압수수색으로 획득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를 택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2심 판결을 깼다.
A씨는 2019년 5월께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안방 금고에 대마 약 0.62g를 보관한 혐의를 받았다. 수사기관은 A씨의 딸에 대한 필로폰 투약 혐의를 수사하던 중 해당 아파트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A씨의 혐의를 발견하고, 대마를 압수했다.
문제는 압수수색 당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A씨의 딸만 아파트에 있었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을 실시할 때는 피의자나 변호인 또는 주거주 등을 반드시 참여시켜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A씨의 딸은 IQ 57 정도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었다. 성년 후견 개시심판을 받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해당 압수수색이 적법하다고 봤다.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7단독 임윤한 판사는 2020년 1월, “마약류 범죄는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동종 전과가 있고,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질렀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2심을 맡은 인천지법 1형사부(부장 이인규)도 2020년 7월, “1심 판단이 정당하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직권으로 해당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시 본인, 주거주나 이웃 등을 참여하도록 한 것은 사생활의 비밀 등 기본권 보호의 필요성이 특히 요구되는 장소에 대해 절차의 적법성을 담보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참여자는 최소한 압수수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참여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참여능력이 없으면 수사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부터 당사자의 보호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
대법원은 “정신과 치료 내역 등을 볼 때 A씨의 딸은 참여능력이 없거나 부족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수사기관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던 만큼 해당 압수수색은 위법하다고 볼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상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당연히 유죄 인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대법원은 “그런데도 원심(2심)은 해당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한 증거를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다”며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므로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