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회고전 ‘생명광시곡’에서 만난 김병종 작가.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그냥 허, 하고 내 체질대로 움직였어요.”
일흔하나의 ‘문인 화가’ 김병종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성가신 비난을 대하는 자세다. 글 쓰는 사람인지 그림 그리는 사람인지, 자꾸만 한 가지로 규정하려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그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그림은 풀어내는, 글은 쪼아대는 작업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업이기에 글과 그림, 그 무엇 하나도 미워하거나 버릴 수 없었다.
“그림은 신체적, 물리적으로 쭉쭉 뻗어나가요. 그런데 자유롭게 풀어내다 보면 지적 공허함이 와요. 작업실에서 나와 서재에 틀어박혀 읽어대기 시작하고 글을 써요. 그러면 지적 공허함이 어느 정도 채워지죠. 그런데 한 보름 쓰다 보면 창작의 샘물을 퍼내고 싶어져요. 다시 작업실로 가는 거죠.”
덕분에 그는 글이든 그림이든 양 분야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대학 재학 중 전국 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이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미술평론과 희곡 부문에 당선돼 등단도 했다.
그가 50여 년간 화업을 하며 함께 출간한 책은 50여 권. 웬만한 작가 뺨치는 분량이다. 국내 여행을 다니며 글 쓰고 스케치하고 이것을 일간지에 연재한 ‘화첩기행’은 다섯 권의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시화기행’은 시와 그림과 유럽 등지에서 시작한 여행을 버무려 내놓은 수필집이다. 발표 없이 홀로 밤 깊도록 쓰고 벼리던 시가 마침내 세상에 나와 독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지난 2022년 발간한 그림 산문집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에는 서울대 교수 재직 시설 신림동에서 ‘칠집 김씨’로 통한 그의 일화 등이 담겼다. 그는 ‘하루 종일 칠하고, 또 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칠집 김씨야 말로 “자신의 제대로 된 직함”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풍경에 취해 떠돌았던 작가는 그 너머를 들춰보며 그리운 이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서로의 진심이 머무는 순간에 대해 반문한다. “그것이 사람이건, 그림이건, 그 무엇이건 어떠한가.”
그는 같은 해에 독서록 ‘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 여행 산문집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등 무려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이듬해에는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생명 칸타타’를 함께 출판했다. 작가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일생을 자기 골목 속에서만 오가는 사람들이다. 다른 세계를 잘 못 보고 광장으로 못 나가는 편”이라며 “그런데 고(故) 이어령 선생님과 최 선생님은 광장에서 우리 한번 만나자고 초대하는 역할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림과 글은 작은 세계로부터 벗어나게 해줬다”며 “글로 가지 않고 그림에 더 집중했다면 더 좋은 화가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지만, 체질적으로 이건 통제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