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의 배경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고 에로틱 스릴러 영화 '원초적 본능'이 개봉된 1992년 시골 마을인 금제다. 주인공인 '아줌마 캔디' 한정숙(김소연)의 남편 권성수(최재림)는 불륜을 하고도 당당하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기고 신체 건장한 이 남편은 아내가 월세를 주기 위해 모아서 장롱속에 꼭꼭 숨겨둔 돈을 훔쳐다 술 먹고 노름하다 다 써버렸다. 어릴 때는 성수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 같아 선뜻 믿고 결혼했지만, 알고보니 개차반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같은 동네에 사는 정숙의 학창시절 친구와 바람이 나 임신까지 시키고도 아내에게는 이 사실을 잡아뗀다.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다.
한마디로 '인간말종'이다. 요즘 말로 하면 '성인지 감수성 제로'인 남자다. 성수라는 인간이 당시 한국 성인 남성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보다는 이혼을 쉽게 하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 민호(최자운)를 위해서라면 성인용품 방문판매까지 하는 정숙이 성수를 상대로 이혼하는 과정을 보니, 약간의 통쾌함을 맛볼 수 있었다.
성수는 아내와 헤어지면서도 "아빠 없는 아들(민호) 만든 것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 거야"라고 말하며 가버렸다.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지난 26일 방송된 5회에서 정숙은 별거나 다름 없는 상태에서 아들과 성수와 함께 강가 잔디로 소풍을 간다. 순진한 정숙이지만 남편과 이별여행을 위한 마지막 가족여행을 마련한 것이었다.
남편인 성수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에게 물수제비를 뜨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난 당시 미소가 역겹다. 내가 불행하면 민호도 그렇게 느낄텐데, 그렇게 만들 순 없어"(정숙)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러려고 이런 자리 마련했어"(성수)
"니가 아팠으면 해서. 당신이 잃은 것들이 뭔지, 오랫동안 추억하면서 두고두고 아팠으면 좋겠어.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주라. 이혼하자 우리"
약간의 사이다가 동반된 이 장면은 주인공 정숙이 이제 우유부담함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길을 향해 분명히 나갈 것임을 선포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싱글맘으로서 가는 그 길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구원자인 김도현 형사(연우진)가 항상 함께 할 것이다.
구원자는 항상 귀가 밝다. 도현은 정숙의 이야기라면 어디서건 엿듣는다. 형사의 촉에 사랑의 촉까지 더해졌으니, 소머즈의 귀라고 불릴 정도로 청각이 예민해 잘 듣는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금기에 도전하며 두터운 편견의 벽을 깨고 더 나은 인생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금희(김성령), 서영복(김선영), 이주리(이세희) 등 ‘방판 씨스터즈’들과 함께 우의를 다지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시청자는 저절로 응원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