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번개장터 제2검수센터에서 김재군 검수팀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
“명품 검수사들은 CSI(과학수사대) 요원들과 닮았어요. 물건을 살피다보면 제품을 쓴 사람이 왼손잡이였는지, 지퍼를 세게 닫는 습관이 있는지, 어느 부위에서 땀이 많이 났는지도 보이거든요.” (김재군 번개장터 검수팀장)
내가 사려는 중고 명품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경기침체 속 중고 명품거래가 활성화되는 가운데 함께 커가는 시장이 있다. 바로 ‘중고 명품 검수시장’이다. 헤럴드경제는 29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번개장터 제2검수센터에서 김재군 검수팀장을 만나 명품 검수시장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주얼리·가방·피혁 브랜드 디렉터 출신인 그는 10만건이 넘는 명품을 검수했다.
김 팀장은 가품 제작기술이 나날이 진화한다고 했다. 김 팀장은 “요즘은 정품과 가품을 교묘히 섞는 물건들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면서 “한 명품 제품은 가품 방지를 위한 내부 홀로그램 스티커가 있는데 물에 불려 이를 떼어내고 가품에 이식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번개장터는 지난 2022년 12월부터 정가품 검수 서비스인 ‘번개케어’를 운영 중이다. 번개케어 전체 거래 건수 약 4만200건 중 절반은 명품이다. 번개장터는 명품 검수 수요가 커지자 지난 7월 약270평(892m²) 규모의 명품 전용 검수센터를 추가로 열었다. 하루평균 200~350건의 물량을 검수하는 제2검수센터의 불합격비율(상태 미달, 가품 등)은 14%, 번개케어의 재사용률은 99%에 달한다.
김 팀장은 “1인당 하루 최대 60~70건을 본다”면서 “중고 명품 검수의 핵심은 판매자가 고지한 정보와 실제 물건 상태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작은 보석 수백개가 파베 세팅(pave setting·촘촘히 보석이 박힌 것)된 주얼리는 착용 후 몇개가 빠지면 사설업체에서 이를 교체할 수가 있다”면서 “이 내용이 고지가 됐다면 검수상 정품이지만 전달이 안 됐다면 구매자에게 해당 사실을 안내 후 구매 결정 확인을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명품시계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번개장터 제공] |
검수 분야는 현재 공인 명품 검수 자격증이 없다. 번개장터는 과거 도제식 방식으로 개인 검수사가 양성되던 폐쇄적 방식에서 탈피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새로운 검수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고도화되는 가품 생산기술을 개인의 검수사가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금속 성분, 지워진 글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기계들을 활용한 기술 검수와 인적 검수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검수사로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 김 팀장은 “수십, 수백년 역사를 지닌 브랜드들도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소재나 완성도가 이전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 세밀한 변화와 디자인 디테일까지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아 데이터를 모으고 주간회의 등에서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수 서비스로 오는 상품들의 품목과 가격도 다양해지고 있다. 김 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검수상품으로 7000만원 상당의 카르티에 ‘저스트 앵 클루’팔찌를 꼽았다. 그는 “다이아몬드 200~300여개를 현미경으로 보다가 눈이 시큰거릴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검수 서비스의 성공적인 안착은 중고 명품거래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궁극적으로는 환경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제품 수명을 늘리고 복원 등을 거치면 버려지는 물량을 줄일 수 있어서다.
김 팀장은 “100년이 넘는 오메가의 회중시계가 검수를 거쳐 새 주인 품으로 갈 때 저 또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면서 “수십년된 금이 폴리싱(닦기)을 통해 새 것처럼 돌아와 3번째, 4번째 주인을 만나는 걸 보면 환경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번개장터는 검수 서비스 비즈니스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이달 번개케어를 기반으로 사진 3장만 있으면 거래가 가능한 ‘바로팔기·판매맡기기(매입·위탁)’를 시작한 데 이어 향후 구매처가 달라도 검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검수 온리’(가칭)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검수사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번개장터는 입문 단계인 루키(일반직원)가 1년간 약 1만개 상품을 검수하는 ‘0차 검수사’ 과정을 끝내면 검증 프로그램을 통해 1차 검수사로 채용한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