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국 주유엔 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및 안보 유지를 주제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3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한 회의에서 한국·미국 정부 대표와 러시아·북한 정부 대표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놓고 거센 설전이 오갔다.
안보리는 이날 우크라이나 평화와 안보 유지를 주제로 최근 북한의 러시아 파병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북한군은 정당한 군사 목표물이 돼 총알받이 신세가 될 우려가 있고, 병사들이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돈은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대사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장병에 대해 “같은 한민족으로서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을 느낀다. 이들이 휴전선 이남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자국민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북한 정권은 결코 용서받아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황 대사는 북러 간 군사협력은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불법이자 다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북러 간 전례 없는 군사 협력으로 유라시아 동서 양쪽의 지정학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며 “한국은 국제 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불법적인 북러 군사협력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고 상황 발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해 3월 유엔 본부에서 열린 북한 핵 비확산 관련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P]. |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된다면 이는 갈등의 심각한 확산을 의미한다”며 “또한 러시아가 점점 절박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이란과 북한에 점점 더 군사적으로 의존하면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과 중동 지역을 위협하는 북한과 이란의 능력이 재앙적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르히 올레호비치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북한 병사들은 현대전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우리 모두 평양의 정권이 이 경험 많은 부대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안보리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존재로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형식과 행동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지난 2022년 2월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P] |
반면 북한과 러시아 정부 대표는 북한군 파병을 명시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파병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나서 사실상 파병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군 파병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며 “서방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동맹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권에 군사력과 정보를 지원할 권리가 있는 반면 러시아의 동맹국은 비슷한 일을 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를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며 북한군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네벤자 대사는 이날 서방측 대표의 발언 도중 휴대전화를 보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네벤자 대사는 이날 발언 마무리 전 한국을 향해 “서방의 교묘한 수작에 속지 않을 정도로 한국 동료들이 현명하기를 희망한다”며 “우리는 모스크바와 서울 간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한국의 자제심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낙관적”이라며 "여론조사에서도 한국 국민의 절대 다수는 우크라이나 갈등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9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
이날 회의에선 북한 유엔 대표도 참석해 러시아의 주장을 거들었다.
김 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다양한 전차, 전투기 등 다양한 군사 장비를 공급을 확대해왔다”며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6월 러시아 영토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 러시아는 정치, 경제, 군사 및 문화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발전시킬 권리가 있고, 이는 북러 조약에 따라 국제법상 규범에 완전히 부합한다”며 “만약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 이익이 미국과 서방의 지속적인 위험한 시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사의 발언이 끝나자 우드 미 차석대사는 답변권을 행사,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언급하며 “이런 (안보) 불안정 행위들은 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김 대사 발언에 대한 답변권을 행사하면서 북한의 국호(DPRK)를 사용하지 않고 “김 정권(김정은 정권) 대표의 발언에 답변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만약 북한군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진입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주검으로 복귀(return in body bags)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로슬라우 옌차 유엔 사무차장보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유엔은 이 같은 발전에 대해 추가적인 세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기된 주장이나 보고를 검증하거나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과 격화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삼가해 줄 것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