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선우재덕(왼쪽)과 김형준이 ‘디어 마이 파더(Dear, My 파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로 만났다. 10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번엔 호흡이 더 완벽해졌다”며 웃었다. 성남=임세준 기자 |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13년. 일일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KBS1)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K-팝 그룹 SSS501로 데뷔한 김형준의 첫 드라마였다. 작품 안에서 두 사람은 부자(父子) 관계는 아니었다. 선우재덕에게는 ‘아들의 친구’였고, 김형준에게는 ‘친구 아빠’였다.
“제 아버지도 아닌데, 6~7개월 정도 작품을 하는 내내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따르게 되더라고요. 너무 좋으니까, 선생님이나 선배님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어요(웃음).”(김형준)
10년 넘게 그 인연을 이어온 배우 선우재덕(62)과 김형준(37)이 이번엔 진짜 ‘부자 관계’로 한 무대에 선다. 뮤지컬 ‘디어 마이 파더(Dear, My 파더)’를 통해서다. 공연을 앞두고 경기 성남 성남아트리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번엔 호흡이 더 완벽해졌다”며 ‘붕어빵’ 미소를 지었다.
‘디어 마이 파더(성남아트리움·의정부예술의전당)’는 선우재덕이 제작자로 나선 첫 작품이다. 배우로 42년을 살아온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배우 생활을 하며 연극을 제작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첫 작품이 뮤지컬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선우재덕이 “뮤지컬에 왜 갑자기 꽂히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김형준은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첫 제작이라 만만치 않았다. 이 작품은 선우재덕이 아이디어부터 스토리텔링·캐스팅·연기·투자·제작까지 ‘1인 다역’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웃음).”(선우재덕)
‘디어 마이 파더’는 현실과는 동 떨어진 판타지가 많은 뮤지컬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현실 밀착형’ 스토리의 작품이다. 가족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 준구(선우재덕 분)와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아들 인범(김형준 분)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간다. 이야기는 선우재덕 배우 인생 내내 그의 안에 있었다.
“저희 아버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국인 아버지의 모습이었어요.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저녁에 돌아와 약주 한 잔 하시면 수염이 까칠하게 올라와도 제 얼굴에 볼을 부비곤 하셨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걸 못 드렸다는 후회가 가슴 한 켠에 늘 남아있어요.”(선우재덕)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감정들은 천천히 이야기로 쌓여 세상에 나왔다. 20대에 접어든 두 아들을 키우며 어느덧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선우재덕은 “아버지를 향한 후회와 그리움이 이 작품의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아이디어가 골자가 돼 최지은 작가를 통해 ‘디어 마이 파더’가 세상에 나왔다.
뮤지컬 제작을 결심하며 아들 역으로 떠올린 ‘0순위 배우’는 김형준이었다. 선우재덕은 “춤도 되고 노래도 되는 배우를 찾아야 했는데 형준이 생각이 딱 떠올라 바로 전화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때가 올해 4월께였다.
“몇 년 만에 아버지 번호가 떠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제가 뭘 잘못한 게 있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그런데 작품 제안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이 들어 두 말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김형준)
무슨 작품인지도 몰랐지만, 그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 선우재덕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 때문이었다는 것이 김형준의 설명이다. 뮤지컬은 그에게도 지나온 시간과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김형준이 연기할 인범은 한창 공부할 나이에 놀다가 대학은 떨어지고, 아버지한테 대들기 일쑤인, 전형적인 반항아 아들이다. 김형준은 “해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잘 안되고, 그래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항암 치료를 앞두고도 두 사람을 화해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임성언 분)의 극적인 이야기와 반전이 더해진다. ‘보통의 가정’을 돌아보게 할 만한 공감 요소가 곳곳에 담겼다. 특히 김형준은 이 작품에서 홀어머니를 많이 떠올렸다고 했다.
“어머니 혼자 저를 키우시며 굉장히 큰 사랑을 주셔서 워낙 관계가 각별해요. 사실 3년 전 저희 어머니도 암에 걸려 치료를 받으셨어요. 과거엔 암이 부담스러운 큰 병이었는데 지금은 나와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뮤지컬에서 이런 소재를 다루는 게 더 이상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거죠. 같은 아픔과 슬픔을 겪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많기에, 우리의 이야기에 (관객이) 많은 공감을 할 것 같아요.”(김형준)
가슴 뭉클한 이야기엔 ‘시대의 명곡’이 자리한다. ‘디어 마이 파더’는 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싸이 ‘아버지’,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감성의 노래가 함께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야기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낼 명곡들은 뮤지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전 포인트다. 무대를 수놓을 노래의 40%가량은 선우재덕이 선정했다. 그는 “노래는 잘 못하지만, 연기하듯이 노래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아들 김형준은 “이 작품 속 최고의 명장면은 아버지가 부르는 ‘어느 노부부 이야기’”라고 했다.
“든든한 거인 같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쓸쓸함이 노래에 담겨 건네는 감동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디어 마이 파더’는 제목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를 위한 뮤지컬이에요.”(김형준)
“워낙 각박해진 때에 이 뮤지컬이 단비 같은 작품이 돼 지금 내 옆의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면 좋겠어요.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 세대와 자신의 꿈을 좇는 자녀 세대가 함께 와 서로를 이해하며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길 바랍니다.”(선우재덕) 성남=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