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도 연구, 주 7일 근무도” 불 켜진 TSMC·엔비디아…K-반도체는 ‘주52시간’에 깜깜 [비즈360]

TSMC와 엔비디아 등 해외 반도체 기업 직원들은 근로시간 제한 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근로시간 규제가 과도해 K-반도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챗GPT로 이미지 제작]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첨단기술 분야를 둘러싸고 국가별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근로시간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에선 연구개발(R&D) 인력들이 근로시간 제한 없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근로시간 규제가 과도해 노동 유연성이 경직돼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앞서 블룸버그는 지난 8월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엔비디아 직원들이 종종 새벽 1~2시까지 일하고, 주 7일 근무도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 미국은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 등에 종사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소득 10만7432달러 이상인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시행 중이다.

일본 역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라는 이름으로 2018년부터 금융상품 개발이나 애널리스트, 신상품 연구개발 등에 종사하면서 연소득 1075만엔 이상의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류더인 전 회장은 지난해 6월 미국 애리조나 공장 직원들의 근로시간 불만에 대해 “장시간 근무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 40시간제를 채택한 대만은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를 8~12시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TSMC의 R&D 조직은 24시간, 주 7일 돌아간다.

이처럼 첨단산업에서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근로시간을 보장받으며 R&D에 집중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업종을 막론하고 일괄적으로 주52시간 규제를 받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뉴스룸]

이로 인해 재계에서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연구개발직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분야가 최근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 심화로 위기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근로시간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의 SGI는 최근 ‘수출기업의 노동생산성 둔화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수출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업엔 유연한 인력 운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기업이 바라는 22대 국회 입법 방향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시장 유연화(20.8%)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엄상민 경희대학교 교수는 지난 9월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디지털 전환 등 기술변화에 따라 생산방식도 빠르게 변화할 것이며 산업에 따라 생산방식이나 변화의 속도가 달라 요구되는 근무 형태도 다를 것”이라며 “근로시간을 사업체와 업종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지금 업계에서는 미국처럼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앞서 국내에서도 연구개발 전문직 근로자들의 R&D 활동 장려를 위해 유사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2019년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소득 상위 3%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기준 적용을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정부와 국회가 ‘반도체 특별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반도체 R&D 인력 등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발판이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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