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앞 낙동강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폐수 거품이 고여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임세준 기자] '백두대간 깊은 산골에 자리 잡은 화학 공장'
서울에서 4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봉화군 석포면. 태백산맥의 여러 산이 굽이치는 낙동강을 끼고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자리하고 있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일대 모습. 1공장(오른쪽) 뒤편으로 고사목과 헐벗은 야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 석포제련소는 외국에서 들여온 광석을 가열하고 전기 분해해 아연을 추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기 오염 물질인 아황산가스와 황산, 카드뮴 등 독극물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련소는 공장 3개 동, 약 15만 평 규모로 들어서 있다. 하지만 태백산 국립공원에서 불과 6㎞ 남짓 떨어진 낙동강 최상류의 산골짜기 청정 지역에 대규모 중금속 공장이 있는 셈이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일대 모습. 제련소 일대의 공기는 무거웠고, 화학 원료 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봉화=임세준 기자 |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일대 모습. 봉화=임세준 기자 |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지방환경청, 경상북도, 봉화군이 함께 55회에 걸쳐 대기·수질·토양·지하수를 점검한 결과 3년간 대기 측정 기록부 1868건을 조작하고 무허가 지하수 관정을 개발하는 등 총 76건에 이르는 환경 법령 위반 사안이 적발되고 이 중 25건은 고발됐다. 또 봉화군은 제련소 안팎에서 아연, 납, 카드뮴 부산물 등에 의한 토양오염을 확인하고 2015년부터 토양정화 명령을 아홉 차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선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영풍제련소대책위)’ 회장은 제련소로 인해서 지역의 환경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련소를 직접 방문해 보면 실감합니다. 공장 뒤편으로 야산에 식생이 다 죽어가고, 벌거숭이가 된 산 아래 암반은 산화가 되어가고 있어요. 제련소 측은 지속적인 환경문제 제기에 개선하겠다고 말하지만, 화학공장은 100% 개선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그 문제를 제기하면 제련소 측은 환경법이 제정되기 전에 설립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환경법이 제정되었으면 그것을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인근에 고사목과 헐벗은 야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신 회장의 말대로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뒤편의 산은 이미 죽어버린 고사목이 널려있고 산은 흙이 다 드러난 상태로 식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뒤편으로 고사목이 야산을 뒤덮고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주변 환경의 오염으로 인해 주민들의 문제는 없는지 수소문해 봤지만, 주민들은 대화를 거부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간신히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그는 신분 노출을 극히 꺼렸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입구에 환경단체를 질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현재 석포제련소에 근로하는 근로자가 1천여 명 되는 거로 알고 있다. 지역경제가 이 회사 하나에 묶여있는데 이전을 찬성하는 사람이 있겠나? 바로 옆 태백도 최근 장성탄광이 문을 닫으며 지역경제가 우려되고 있다”라며 조심스레 말했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마을에서 한 주민이 지나고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이어 “몇 년 전 강릉 쪽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안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서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계속 가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라고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수소문 끝에 인근 태백에서 영풍 석포제련소 퇴직자 진현철 씨를 만났다. 진 씨는 제련소에서 6년 9개월을 근무했다고 말했다. 평소 100kg 체중을 유지했던 진 씨는 어느 날부터 입맛이 없어지고 죽도 못 먹을 만큼 쇠약해져 병원으로 갔더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퇴직자 진현철 씨가 5일 오전 강원도 태백시 본인의 가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태백=임세준 기자 |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순물 찌꺼기를 긁어내는 작업을 주로 했어요. 독한 냄새가 나는 가스를 얼굴에 뒤집어쓰면서 합니다. 저희 같은 계약직 직원들은 방진 마스크를 받는데 그걸로 가스가 막히나요? 어떤 사람은 하루 일하고 관두고, 어떤 사람은 2~3일 만에 일을 그만뒀어요. 2인 1조로 일하는데 첫날 출근하니 파트너가 저한테 14번째 파트너라고 하더라고요. 그 일을 6년을 했습니다”
이어 “기자님도 제련소 뒷산 보셨죠? 그 수증기로 인해 뒷산에 나무가 말라 죽고 벌거숭이 산이 되는데 사람이라고 멀쩡하겠습니까. 그 수증기를 맡고 제가 일했습니다. 저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 왔습니다. 죽기 직전이라는 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삶의 끝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거죠. 완치는 없어요. 발병 초에는 하루에 혈액을 3봉지씩 수혈받았어요. 피가 자꾸 안 좋아지니까. 그러다가 1봉씩 수혈받는 정도로 나아지긴 했죠.”
영풍 석포제련소 퇴직자 진현철 씨가 5일 오전 강원도 태백시 본인의 가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기침을 하며 목을 만지고 있다. 태백=임세준 기자 |
인터뷰 내내 기침을 심하게 했다. 목소리도 쉬어버린 지 오래됐다고. 그는 이 모든 것이 제련소에서 근무하며 들이마셨던 연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 씨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환노위는 진 씨와 같이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장 고문은 환노위 증인 채택 하루 전날 일본으로 출국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환경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낙동강에 불법 폐수배출하는 공해 공장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시민단체들도 제련소 폐쇄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안동환경연합, 대구환경연합,‘석포제련소 주변환경오염 및 주민피해공동대책위원회’ 등이 모여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1300만 영남 주민들의 식수선인 낙동강 상류에 있는 석포 제련소가 51년 동안 가동되며 벌인 각종 환경 범죄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산업폐수를 불법으로 배출하고 하도급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곳이 석포제련소”라고 규탄했다.
참석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영풍 석포제련소의 문제 지적과 함께 폐쇄를 위한 조치를 환경부와 경상북도에 촉구했다.
5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뒤편으로 고사목과 헐벗은 야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봉화=임세준 기자 |
영풍은 지난 1일 대법원의 조업정지 2개월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2019년 폐수 무단 방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이 2개월 조업정지 판결을 내린 것은 수십 년간 지속된 제련소의 환경오염 행위를 단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갈 길이 멀고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