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심아란·노아름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꺼냈던 일반공모 유상증자 카드가 금융감독원 제동에 무용지물이 됐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할지 주목된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계획이 지연된 사이 MBK 측은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위한 소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일 고려아연에 ▷유상증자 추진 경위와 의사결정 과정 ▷주관사의 기업실사 경과 ▷청약 한도 3% 제한 배경 ▷공개매수신고서와 차이점 등에 대한 내용을 신고서에 보강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자진철회하도록 금감원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감원이 시장 예상보다 일찍 정정신고서를 요구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금감원은 오는 14일까지 고려아연에 정정 요구할 수 있었는데 일주일여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고려아연이 향후 3개월 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유상증자는 철회된 것으로 간주된다. 다만 두산그룹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 유상증자 재추진의 부담도 상당하다. 금감원은 수차례에 걸친 정정요구를 통해 두산로보틱스·밥캣의 합병 계획을 철회시킨 바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MBK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3조1000억원의 단기차입금 기반으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공개매수가 종료되고 사흘 만인 지난달 30일 2조5009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알렸다. 유증으로 마련한 자금 중 2조3000억원은 단기차입금 상환에 투입한다고 밝히면서 주주 반발을 사고 있다.
자사주 공개매수 명분으로 주주환원을 내세우다 돌연 주주 돈으로 회사 차입 부담을 덜어낸다는 의사결정에 부정적 평가가 이어진다. 최 회장이 MBK 연합의 의결권을 희석하기 위해 전체 주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여론의 지지도 잃은 상태다. 금감원까지 고려아연 유상증자의 필요성 소명을 요구하면서 최 회장 입지는 좁아졌다.
시기도 문제가 됐다. 고려아연은 89만원에 실시한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 중에 유상증자를 계획했고,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거래를 주선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을 대상으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유상증자가 지연될수록 최 회장은 우호주주 확보가 어려워진다. 기존 계획대로 이번 유증은 연내 종료돼야 최 회장에 유리했다. 정기주주총회 주주 기준일인 ‘직전 사업연도 말일’ 시한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유상증자를 재추진하더라도 신주 상장일이 해를 넘어가면 우호주주 확보 측면에서 의미가 없어진다.
최 회장에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는 사이 MBK와 영풍 연합은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 MBK 측은 임시 주주총회 소집에 성공할 경우 이사회 장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들은 14명의 신임 이사진 선임, 집행임원제 도입 등을 추진 중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내달 중 고려아연 임시 주총이 열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MBK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에 이어 법원에도 임시 주총 소집 허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송 전면에 선 영풍은 법무법인 케이엘파트너스, 세종, 한누리 등에서 32명의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며 임시주총 소집 당위성 설득에 한창이다. 최 회장 측도 김앤장 변호사 등 15명의 소송대리인단을 통해 방어에 나선 상태다.
고려아연은 향후 행보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신고서 ‘기재오류’ 탓에 투자자 및 당국의 오해가 생겼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알렸다.
이와 별도로 고려아연은 ㈜한화 지분 매각과 자회사 대여금 조기상환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상태다. 구체적으로 고려아연은 한화에너지에 보유 중이던 ㈜한화 지분 7.25%를 1520억원에 처분해 현금화하기로 했다. 여기에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 맥킨타이어에 대여한 자금 약 3900억원은 이달 중 조기 상환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