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조선의 충청 이남과 호남 지역에서 집중적 선교활동을 펼친 전킨, 레이놀즈 등 내한 선교사를 다수 배출한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 이민경 기자 |
10월의 마지막 날(이하 현지시간),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위치한 유니온장로교신학교(1812년 설립)의 교정은 빨갛고 노란 가을빛으로 물들어있었다. 크림슨 벽돌로 지어진 건물에서는 유서깊은 신학교의 정취가 전해졌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0월 28일부터 5일간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 초기 선교사를 보낸 미국 소재 파송교회와 출신 신학교 등을 찾았다.
초기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서울 지역에서 활동한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연세대 창립)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배재중·고 창립)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반면, 서울을 벗어난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이어간 선교사들의 이름은 다소 가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방에 배정된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다한 헌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특히 전북 군산에서 활동한 윌리엄 전킨(1865~1908) 선교사는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세 아들을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면서도 한국에서 사역을 접지 않았다.
유니온신학교는 바로 전킨 선교사가 공부한 곳이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호남 선교의 문을 연 미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전킨을 비롯해 윌리엄 레이놀즈(1867~1951) 선교사(전주신흥고 설립자),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전남 최초 선교사) 등의 신학교 지원서가 아직까지 잘 보관돼 있었다.
충청 이남과 호남에 한국말에 서툰 선교사들이 파송된 데에는 1세대 선교사인 언더우드의 공이 크다.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간 언더우드는 조선에 일꾼이 필요하다며 선교 지원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에 이듬해 가을 미국 남장로회 소속 전킨, 레이놀즈 등 선교사 7인이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유니온신학교에 보관된 각종 자료 등에 따르면, 전킨은 미국 남부 버지니아 크리스천버그의 전형적인 유럽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줄곧 해외 선교의 뜻을 품었다. 1892년 제물포항(현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내린 후 서울 도심에서 전염병 구호활동을 하다 4년 뒤인 1896년 군산에 가 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를 설립했다. 그의 부인 메리 전킨도 군산여학교를 설립하는데 힘을 쏟았다.
사실 그의 한국 사역은 크나큰 시련이 함께했다. 이듬해 큰 아들 조지를 풍토병으로 떠나보냈고, 1899년에는 넷째 아들 시드니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다. 1903년 출생한 다섯째 아들 프란시스는 생후 20일 만에 땅에 묻었다. 8남매 중 세 아들을 풍토병으로 가슴에 묻은 것이다. 전킨 본인도 한국 땅에서 사망해 먼저 보낸 어린 아들 곁에 잠들었다.
전북 전주에서 활동한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도 1890년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유니온신학교에 입학했다. 2년 만에 3년제 학사를 마치고 한국 선교의 길을 떠난 그는 서울에서 한국어를 선교사들 중 가장 빨리 습득, 길거리 전도는 물론 정동제일교회에서 한국어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1897년에 가족과 함께 전주로 내려가 성경반을 운영하며 교회 지도자를 양성했다.
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나도 전킨 선교사가 설립한 군산제일고를 다니며 목회자의 꿈을 이루었다”며 “기독교 140주년을 맞아 초기 선교사들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기며 오늘날 한국 교회에 회고와 자성은 물론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치먼드(미국 버지니아)=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