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별개 법인도 경영상 일체라면 하나의 사업장, 근기법 적용”…첫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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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별개의 법인이라도 실질적으로 경영상 일체를 이뤘다면 하나의 사업장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근로기준법이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여부를 가르는 기준인 셈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서경환)는 여행사 비코트립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부당해고를 인정하며 중앙노동위원회 측 승소로 판결한 원심(2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확정했다.

사건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께 발생했다. 비코트립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업계 불황’, ‘사업 폐지’ 등을 이유로 해고 당했다. 비코트립은 다국적기업의 계열사다. 다만 A씨의 해고 무렵 한국사무소 직원은 불과 3명이었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된다. A씨는 부당 해고를 주장했지만 비코트립 측에선 그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반면 A씨 측은 “비코트립 본사의 다른 계열사 한국영업소 직원까지 합하면 5명이 넘으므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라고 재반박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비코트립 한국사무소와 다른 계열사가 실질적으로 경영상 일체를 이뤘다며 하나의 사업장으로 판단했다. 그러자 비코트립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도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3부(부장 유환우)는 2022년 8월께 비코트립 측 패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비코트립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맞다”며 “다른 계열사와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고, 법인 별로 공간도 엄격히 구분되지 않았으며, 인사·노무관리도 함께 받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비코트립 측에서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10행정부(부장 성수제)도 지난해 9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부당해고가 맞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비록 비코트립의 본사가 외국법인이고, 본사가 해외에 있으며 정확한 상시 근로자 수가 밝혀져 있진 않지만 국내에 영업소를 갖고 있고 최소 6명 이상 상시 근로자를 고용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비코트립은 A씨 등으로부터 후방 지원 업무를 제공받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 역시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두 회사가 같은 사무실 내 동종업을 동일한 방식으로 영위했고, 통합된 조직으로 업무를 수행한 점이 인정된다”며 “직원들 모두 두 회사를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으로 인식하며 인적 교류가 이뤄졌으므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맞다”고 봤다.

이어 “근로기준법에 비췄을 때 A씨의 해고는 부당해고”라며 “비코트립의 사업 폐지는 타회사와 통합일 뿐 폐업이라고 보기 어렵고, 해고회피 노력도 하지 않았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동일한 외국기업을 지배기업으로 하는 한국법인과 외국법인의 한국영업소가 같은 사무실에 함께 있었던 경우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 단위로 볼 수 있다면 하나의 사업장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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