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트럼프가 인정한 김현종 “트럼프 아젠다 비밀 아니다…다만 이행 속도에 놀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본인의 저서에 김현종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해 메시지를 적어 보여주고 있다.[김 전 본부장 엑스 사진]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전 호주 총리 맬콤 턴불의 저서를 참고할 만합니다. 트럼프 인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아젠다는 비밀이 아니다. 모두 공개된 것, 다만 이행하는 속도에 놀랄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제1기 행정부를 상대로 철강 232조 국가면제 확보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조기 타결을 거둬 일본과 유럽연합(EU)와 달리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진압한 주역인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키맨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점을 이같이 밝혔다.

이는 김 전 본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서 김 전 본부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미리 점치고 지난 4월 중순께 한 달간 미국에 머무르면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비롯한 트럼프의 핵심 키맨들을과 아웃리치(대외접촉)을 위해 플로리다, 뉴욕, 워싱턴 D.C 등을 끼니조차 챙기지 못한 채로 누비면서 다녔다.

김 전 본부장은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를 만나 중국 등에 관세 부과,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멕시코산 전기차 등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 미국 통 상 정책에 대해 논의한 것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밝혔다. 김 전 본부장은 당시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좋아하는 루트비어(root beer)까지 직접 챙기는 치밀함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작년에 발간한 저서 ‘공짜 무역은 없다’에서 우리나라와 협상 일화를 소개하면서 김 전 본부장에 대해 “난 그가 마음에 들었다(I liked him)”며 호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를 설계한 인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경제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트럼프 2기에서 상무부 장관 등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당시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아 한미 FTA 개정을 요구했으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전 세계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우리나라를 강하게 압박했다. 김 전 본부장은 통상 수장으로서 미국과 협상을 총괄했고, 라이트하이저가 그의 상대였다. 한미 FTA 개정협상은 김 전 본부장과 라이트하이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직접 협상을 진두진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실무자 수석대표가 대부분의 협상을 지휘하는 상향식(bottom-up)이 아니라 두 통상장관이 하향식(top-down)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에 조기타결이 가능했다는 평이다.

김 전 본부장은 ‘국익을 위해 양보없이 싸워라’는 신념을 갖고 협상을 치열하게 임했지만 그 과정에서 친분을 쌓아 지금까지도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본부장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 유예 대상국 중 가장 먼저 국가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국내 철강기업의 대미 수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한 바 있다.

김현종(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18년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펠리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정문’ 서명식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념촬영은 이방카 보좌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헤럴드경제DB]

김 전 본부장은 지난 4월25일에는 뉴욕에서 마이클 프로먼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을 만나 한미 경제협력과 지정학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엑스를 통해 밝혔다. 미국 체류기간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래리 커들로와도 식사하고 트럼프 재집권시 국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과도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장녀인 이방카 당시 백악관 보좌관과도 기념촬영을 할 정도로 친분을 쌓았다. 트럼프 키맨들을 두루 만나면서 트럼프 재집권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책을 준비한 것이다. 김 전 본부장이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김 전 본부장은 2004년 7월 45세의 나이로 통상정책의 사령탑인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고 2017년 8월 부활된 통상교섭본부의 초대 수장으로 역임했다. 두 번의 통상교섭본부장을 통해 FTA는 단 한 건도 없어 FTA 낙제생이던 우리나라를 일약 모범생으로 이끈 주역 중의 주역이다.

특히 한미FTA 개정협상을 진두진휘하면서 남다른 글래디에이터의 기질을 발휘, 트럼프 제1기 행정부의 레이더에서 가장 먼저 벗어났다는 성과를 거뒀다.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시대 검투사로 김 전 본부장이 자신을 종종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2018년 1월 5일 미국에서 열린 1차 한미 FTA 개정협상에 앞서 협상단에 “이런 이런 것은 레드라인이니 꼭 지켜야 하고 만약 상대방이 이런 이슈를 제기할 경우에는 심지어 워크아웃(퇴장) 하라”고 지시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 전 본부장의 협상 원칙 중 하나가 ‘우리 기술 발전을 저해하거나 미래 세대의 손발을 묶는 효과가 있는 부분은 양보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김 전 본부장의 협상력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개정 협상 상대임에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한미 FTA 개정협상체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취임 후 처음으로 주요 국가와 타결한 무역협정으로 의미가 크다.

또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김 전 본부장을 “생존하는 가장 똑똑한 통상 협상가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며 공격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본부장은 2017년 8월 4일부터 2019년 3월4일까지 통상수장을 맡으면서 트럼프 제1기를 상대로 한미FTA 조기 개정협상 타결, 미 무역법 232조 ‘한국 자동차 제외’, 철강 232조 국가면제 등 최적의 성과를 내고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대학으로 이직을 위해 사직서까지 제출했던 당시 유명희 교섭실장을 본부장 후임으로 임명되도록 노력한 것도 관가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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