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이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트로트가수 김호중(33)의 음주 뺑소니 사고 여파로 음주운전 사고 후 이른바 '술타기'를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김씨의 행동이 음주운전 혐의를 피하는 이른바 '가이드'가 됐다며 모방 범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실제로 이런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가 음주 뺑소니로 물의를 빚은 직후 직장인 익명 앱에 경찰청 소속 직원이 작성한 글을 화제가 된 바 있다.
화제가 된 글은 "김호중이 가져다 준 교훈. 음주운전에 걸리면 무조건 도주, 주차된 차를 충격해도 무조건 도주, 음주단속에 걸리면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 소주를 마신다"는 것으로, 김씨처럼 음주운전 후에 이 같이 행동해 혐의를 피하려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4시10분께 성남시 수정구 성남대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A(22) 씨가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가던 B(37) 씨를 치어 숨지게 한 뒤 그대로 달아났다.
그는 체포될 당시 출동한 경찰관에게 "집에 와서 술을 마셨다"고 거짓 진술하는 등 이른바 '술타기'를 시도했다. 집 안에 있던 빈 술병 등을 경찰에게 보여주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A씨의 말은 곧바로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동선 추적을 통해 A씨가 사고 전 주점 3곳에서 술을 마신 사실을 파악했다. 이어 정황 증거를 토대로 A씨를 추궁해 추가 음주 사실이 없는 점을 자백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술에 취해 경황이 없을 법한 상황임에도 '술타기'를 통한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며 "다행히 빠른 초동수사로 거짓 진술을 곧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술타기'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지난 달 28일 부산 사상구 강변대로에서는 60대 남성 C씨가 모는 SUV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여성 D씨를 치었다. D씨는 뒤따르던 차량에 재차 치인 뒤 결국 숨졌다.
조치 없이 달아난 C씨는 같은 날 오후 3시께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C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3%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C씨는 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음주운전 사실은 부인했다. 그러면서 같은 날 오전 9시에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매해 1시간여 뒤 반병을 마셨다고 주장하며 구매 영수증을 제시했다.
경찰은 C씨가 사고 전날 밤 술집을 들른 점 등을 확인하고 숙취 운전에 이은 '술타기' 수법을 의심하고 있지만, 사고 이후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데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처럼 법망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속칭 '김호중 방지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6월10일 교통사고 등으로 음주운전이 들통날 상황에 놓였을 때 추가 음주로 측정에 혼선을 주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신영대 의원도 지난 6월18일 '술타기' 행위에 대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경찰 관계자는 "술타기 관련 처벌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음주운전 혐의 입증에 대한 보완적 수단으로서 처벌 수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는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결과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김호중은 서울 강남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중앙선을 침범해 택시를 들이받은 뒤 매니저를 대신 자수시키고, 자신은 경기 구리시의 한 모텔로 도피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 마시는 등 수사에 혼선을 줬다.
그 결과 김씨는 사고 후 17시간이 지나서야 음주 측정을 했다. 당시 김씨의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검찰은 지난 6월 김씨를 위험운전치상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 결국 음주운전 혐의를 제외했다.
김씨 스스로 음주운전 사실을 자백까지 했는데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면하게 되자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 김씨의 행동이 음주운전 혐의를 피하는 이른바 '가이드'가 됐다며 모방 범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