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열린 발다이 토론클럽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러시아와 북한 쌍방 중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조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북한과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에 서명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앞서 러시아 하원(국가두마)과 상원은 푸틴 대통령이 제출한 이 조약의 비준안을 각각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 있다.
북한 역시 비준·서명에 해당하는 절차를 밟아 러시아와 비준서를 교환하면 조약의 효력은 무기한으로 발생한다.
북한이 조약을 비준·서명했는지는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일반적 조약은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는데, 중요 조약이라면 국무위원장, 즉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준·폐기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비준서 교환까지의 절차에는 특별한 걸림돌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조약은 지난 6월 19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체결한 것으로, 양측의 관계를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낳았다.
옛 소련 시절인 1961년 양측이 체결했다가 1990년 소련 해체와 함께 폐기된 동맹조약 속의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사실상 부활시켰다는 평가도 나왔다.
북한이 공개한 전문에 따르면 이 조약은 총 23개 조항으로 구성된다.
주권 존중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유지·발전,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 교환과 국제적 협력, 국제 평화·안전을 위한 협력 등의 내용이 제1∼3조를 구성한다.
제5조부터는 상대국 이익에 반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으며 다극화된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협력하고 국제기구 내 공동 이익을 위한 협력, 방위 능력 강화, 식량·에너지·기후변화 등 전략적 분야에서의 협력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전방위적 협력을 약속한다는 취지와 함께 분야별 협력 대상도 나열돼 있다.
무역·투자·과학기술, 국경 문제, 농업·교육·보건·품질인증·법인 및 국민 권리 보호, 법 집행 및 제정, 테러·불법이주 등 국제적 위협, 정보 안전, 문학 및 언어연구, 언론 및 허위 정보 대응, 조약 이행을 위한 세부 협정 체결 등이 협력 분야로 거론돼 있다. 마지막 23조에는 조약이 무기한 유지되며 종료 시 1년 전 서면으로 통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가운데 제4조가 핵심으로 꼽힌다.
어느 일방이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및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국제사회가 침략 전쟁에 가담하는 불법 행위라고 비판하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서도 향후 조약 제4조는 법적 구실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북한군 파병 정황을 뒷받침하는 위성 사진이 공개되자 파병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우리와 북한의 관계에 관련해 여러분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비준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그 조약에는 제4조가 있다. 우리는 북한 지도부가 우리의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조약은 러시아의 핵 전력이 북한으로 확장되거나 북러 간에 합동 군사 훈련이 실시될 가능성 등 글로벌 안보의 불안을 증폭할 여러 변화의 단초로 활용될 수 있다.
이에 푸틴의 서명과 함께 조약이 발효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