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건전한 연구실 문화를 위한 작은 실마리

세탁을 하다 보면 늘 양말이 제짝을 잃어가듯, 왜 블루투스 이어폰도 한 짝만 남는 걸까. 오랜만에 서랍 속 유선 이어폰을 집어 든다. 어김없이 얼기설기 꼬인 줄을 풀며 출근한다. 오늘은 연구윤리, 갑질 예방 등 연구원에서 윤리경영 업무를 담당해 온 경험을 살려 인접 기관 직원 간 연구윤리 갈등 사례 심의에 참여하는 날이다.

말 그대로 실의 첫머리인 ‘실마리’를 찾아 들어가 본다. 대개 복잡한 사례라도 당사자들은 우호적인 관계에서 특정 시점의 사소한 갈등으로 신뢰가 깨져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로의 주장은 너무나 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공정한 심의를 위해서 합리적 의심과 명확한 증거로 주장을 선별해야 하는 과정은 항상 쉽지만은 않다.

연구윤리는 기존 위조·변조·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에서 학문 교류에 관한 윤리, 이해충돌 관리, 건전한 연구실 문화 조성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2021년에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을 담고, 연구기관 및 연구자의 책임과 역할이 명시되었다. 법률에 규정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이에 정부와 전담기관이 발간한 ‘국가연구개발 연구윤리 길잡이’는 이 분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들머리가 됐다.

그중 ‘건전한 연구실 문화 조성’은 조직 문화 및 갈등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다. 길잡이에서는 ‘건전한 연구실 문화’란 구성원 간 상호 존중과 개방형 소통을 통해 활기찬 공동체 지향의 문화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는 과다한 경쟁의식과 인식 차이, 연구성과 기여도 배분, 외부활동 및 이해충돌 등에서 다양한 갈등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등 계층 및 세대 간 갈등도 발생 가능한 요인이다. 이에 대응해 권익 보호와 갈등 해소를 위한 제도적 처리 절차 및 예방 교육도 세분화되었다.

갈등은 어느 조직이나 존재한다. 적절한 긴장은 오히려 조직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인간관계가 갈등을 해소해 가는 과정인 만큼 연구자들이 건전한 연구실 문화에 공감해 가는 과정이 지속적이고 가치 있는 연구성과에 이르는 기반이다. 성공적인 연구성과의 최소한이자 최대한인 이유다.

연구자들은 평소 제도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 사례가 발생하면 불필요한 억측으로 연구 역량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제도화된 절차와 증거를 통해 신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연구 현장은 학문적 진보와 발전을 위해 소통과 논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충분한 소명 후 결과를 수용할 열린 용기도 필요하다. 연구윤리 틀에 갇혀 연구가 위축되면 개인과 사회 모두 손실이다.

또한 연구자 간 신뢰와 배려로 윤리적 위험을 사전 예방하는 자율적 노력이 필요하다. 관행화된 연구실 문화에서 벗어나 동업자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길잡이에서 언급된 ‘건전한 연구실 문화’는 지속 가능한 연구성과 창출이라는 공동체 문화를 지향한다.

생성형 AI도구 활용 및 진실성 문제 등 최근 이슈와 함께 오늘 심의할 갈등 사례를 어떻게 풀어낼지 생각하며 꼬인 이어폰 줄을 하나씩 풀어본다. 서랍 속에 엉켜 있던 줄을 풀어가니 이승환의 ‘화양연화’ 노랫소리가 여유롭게 흐른다. 그 한쪽을 출근길 연구자에게 내주며 함께 듣고 싶은 아침이다. 지금이 서로에게 가장 찬란한 순간이다.

이종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윤리경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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