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CG에도…글래디에이터2, ‘속편의 저주’ 그대로 답습 [요즘 영화]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위대한 원작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장식한 전투 장면으로 ‘끝장’을 보려고 했던 걸까. 서사는 지나치게 단조롭고 인물의 심리 묘사는 녹슨 칼날 마냥 무디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였지만 ‘속편의 저주’를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세기 로마 제국을 고증한 압도적 스케일과 전작을 잇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출은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지만, 주로 시각적 충격으로 기능한다. 정작 영화의 큰 줄기인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아 전개가 뚝뚝 끊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다. 이는 24년 만에 돌아온 영화 ‘글래디에이터2’ 이야기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가 13일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했다. 제작비만 3억1000만달러(한화 약 4310억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초특급 대작’ 영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전 세계에서 4억6058만달러(약 6429억원)를 벌어들인 전작을 만든 거장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87)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의상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5관왕을 휩쓴 전작의 속편을 만드는 심적 압박이 상당했을 터. 각본은 4년 간 표류했다. 지난달 25일 화상 간담회에서도 스콧 감독은 “속편은 굉장히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는 전편 ‘글래디에이터’(2000)의 주인공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가 콜로세움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 20년 후의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로마의 영웅이자 최고의 검투사였던 막시무스가 인생을 걸고 지킨 터전은 결국 병든 모습이 됐다. 그렇게 쌍둥이 황제의 폭압 아래 공평한 법이 지켜주는 ‘로마의 꿈’은 잊힌 지 오래다. 권좌를 지키기 위해 잔혹하고 무자비한 결정을 서슴지 않는 쌍둥이 황제에게 목숨을 건 누군가의 결투는 그저 여흥거리로 전락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와 중에 로마군에게 대패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데 익숙해져 버린 루시우스(폴 메스칼 분)가 전쟁 포로가 된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 잡힌 루시우스를 검투사로 발탁한 이가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 분)다. 로마의 몰락을 원하는 루시우스의 복수를 돕는 듯 보이는 그는 황제를 자기 입맛따라 조종하는 영악한 인물이다. ‘제2의 주인공’이라고 할만큼 극 중 비중이 상당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전작의 호야킨 피닉스의 입체적인 연기가 자꾸 떠오를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148분의 러닝타임 중 절반 쯤이 지나고, 알고 보니 고귀한 순수 혈통을 가진 루시우스의 출생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후부터는 영화가 전형적인 전개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예측 가능한 흐름대로 진행된다.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영화 속 대규모 전투 신은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이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장면을 위해 스콧 감독은 실물 크기의 60% 축소판 세트를 짓고, 그 안에 물을 채워 배를 띄웠다. 검투사들이 탄 배는 주저하지 않고 로마 군단의 방어선을 향해 돌진한다. 상어가 득실거리는 피비릿내 나는 물 위에서 생존을 건 처절한 전투가 장면마다 긴장감을 극에 달하게 한다. 폭군 황제인 카라칼라 역을 맡은 배우 프레드 헤킨저는 “압도적인 세트장 덕분에 그 당시 로마인이 된 것 마냥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며 “촬영 현장 규모를 볼 때마다 (스콧 감독이) 영화에 진심인 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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