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고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형! 모르면 4번! 웃으면서 시험장 나와!”
14일 오전 7시께 서울 서초구 반포고 앞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예년처럼 시끌벅적한 후배·학부모의 수능 응원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수능 시험장을 찾은 수험생의 다짐과 학부모의 응원은 똑같았다.
사촌형을 응원하러 왔다는 엄시원(14) 군은 “컴퓨터 공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형을 응원하러 왔다”며 “이제 얼른 수능이 끝나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엄군은 응원하는 사촌형이 도착하자 연신 그를 얼싸안고 미소 지으며 “모르면 4번을 찍어라”고 외쳤다.
교회에서 만난 친한 형을 보러 왔다는 장모(16) 군은 “형한테 한마디 하자면 3년간 정말 정말 고생 많았고, 공부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며 “빨리 끝내고 나랑 게임 한 판 하자”라며 웃기도 했다.
이날 ‘수능 한파’는 없었다. 영상 14도의 따뜻한 날씨 속에 수험생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로 시험장을 향했다. 학부모들은 입실 시간이 지나 교문을 닫히고도 한동안 학교를 바라보며 응원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수능에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이 배제됐다는 발표에도 ‘N수생’이 많아 치열해진 경쟁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포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던 김연수(18) 군은 “올해 수능은 재수생이 많아서 최상위권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올해 6·9월 모의고사 난이도가 달랐기에, 이번 시험 난이도에 따른 입시 경쟁도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정원(18) 군은 “시험 난이도가 어찌 되든 간에 서울대는 제가 갑니다”라며 “다 부수고 들어갈 것”이라며 손을 높게 쳐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현준(18) 군은 “수능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주변에 많은데, 못 보면 또 시험 봐야죠”라며 “시험 잘 보고 나오겠습니다”라고 꾸벅 인사하며 사라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 들어가던 전정(18) 양은 다소 지친듯한 표정으로 “끝나면 집에 가서 푹, 밀린 잠을 다 잘 것”이라며 시험장에 들어갔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환자복 차림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반포고에 도착한 대진디자인고 학생 이모(18) 군은 “수시 예비 1번을 받았고 입원도 한 상태라 시험을 안 볼 생각이었지만,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이고 수험표 할인이 받고 싶어서 왔다”며 웃었다.
아침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수험생과 시험장을 찾은 학부모는 교문 안으로 들어간 자녀를 바라보며 애타는 마음을 전했다. 재수생을 둔 학부모 A(55) 씨는 “아들이 고려대를 목표로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라며 “솔직히 쉽지는 않지 않느냐, 그래도 자기가 준비한 만큼 잘 보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여고에 딸을 들여보낸 학부모 조모(49) 씨는 “수능 1세대인데, 고생한 딸이 너무 짠하고 그렇다”며 “아침에 도시락을 싸는데, 수저 세트를 안 넣어줘서 편의점에 들려서 겨우 들려 보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째 딸이 생일인데 미역국도 못먹었다. 수능 끝나면 생일파티도 하고 미역국도 편하게 온 가족이 먹을 예정”이라며 미소 지었다.
반포고에 아들을 들여보낸 학부모 황성찬(49) 씨는 “내가 걱정한다고 아들이 수능을 잘 보는 건 아니라 생각이 들긴 하는데, 차분하고 침착하게 잘 보고 나오면 좋겠다”며 “여태껏 공부해 온 대로 마음 차분하게 분발해주면 좋겠다. 시험이 끝나면 가족끼리 정감어린 대화를 나누고 싶다”라며 한참을 서성이기도 했다.
‘경찰차’를 타고 수능 시험장에 도착하는 아찔한 모습은 이번에도 종종 목격됐다. 여의도여고 앞에 경찰차를 타고 들어온 학생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경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권기승 여의도자율방범대장은 “8시가 넘은 시간에 늦을까봐 여의나루 역에서 학생을 태우고 겨우 들어왔다”며 “학생 본인한테 도와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고, 우리가 태워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대장은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학생을 향해 “얼른 들어가서 잘 보고 와요”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정근식 서울시교육감도 반포고를 찾아 수험생을 향한 응원을 건넸다. 정 교육감은 “날씨가 춥지 않아서 수험생들이 평소 실력을 잘 발휘할 조건이라 생각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복을 입고 수능 시험장을 찾은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여러 학생과 악수를 나눴는데, 손이 차기도 하고 땀에 젖은 이도 있었다. 긴장 풀고 평소 실력을 잘 발휘하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정 교육감은 이날 반포고 교문이 닫힐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용재·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