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 고정우(변요한)가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변영주 감독의 세심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멋진 드라마가 탄생했다. 많은 인물들이 모두 스토리에 연관돼, 출연배우들의 활용도가 가장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여기서 배우 고준이 맡은 노상철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 관찰자 시점이다. 노상철은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 형사지만, 일 때문에 결혼할 사람을 잃고 삶이 망가진 후 지방으로 발령받은 형사다.

“진실과 거짓의 공방시대라는 느낌이다. 별 것 아닌 것으로 힘들어진 시대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 드라마도 딱 그 서사로 이뤄졌다. 누군가 여기에 짱돌을 던져줄 인물이 필요한데, 그게 노상철이다. 노상철은 제 시선만으로 하면 조금 달라졌을텐데, 변영주 감독의 지능이 들어와 훨씬 좋아졌다.”

고준은 노상철을 보면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을 당해 트라우마가 생겼고 세상 범죄자들을 다 싸잡아 미워하게 됐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면서 자신보다 더 억울한 고정우(변요한)라는 사람을 만난다.

고준은 “선입관을 가지고 본 사람중에도 억울한 덫에 빠진 경우도 있다. 착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 수 있다. 점점 객관적인 시선으로 디벨롭되더라”라고 노상철 캐릭터 변화를 설명했다.

“전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보통으로 살아라’ 라고 말하는 문장속에 드러난다. 대사의 울림이 컸다. 변영주 감독이 썼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내가 요가를 시작했는데, 바로 다리를 찢고 싶지만 욕심 부리면 다친다. 도파민만이 아니라 느리게 걷고, 내려놔도 된다. 그것이 용서의 시작이다.”

고준은 이런 대사를 접하면서, 자신의 삶이 들킨 것 같았다고 했다. 진실은 그림 뒤편에 있다. 우리가 각자 팩트라고 얘기하는 사실은 잘못된 기억일 수 있다. 자기 유리한 대로 저장한다. 비디오로 찍어둘 수밖에 없다. 본질을 다르게 해석한다. 서로 다툴 수밖에 없다. 이런데 어떻게 살아가냐고?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고준은 연기할 때도 연기 본능이 더워지면 안더워지려고 하고, 태아의 안정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살인자 누명을 쓰고 복역하는 고정우 역의 변요한과는 초반에는 안친했다고 했다. 고정우와 노상철 이 친해지는 수순대로 친해졌다. 합의가 없었다. 연기 가치관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금은 친해졌다. 마지막에 뭉클했다. 법원에서 고정우(변요한)가 좋은 결과를 받고 공원에서 음료수를 들고 나에게 안긴다. 마치 키스하는 것 같은 느낌의 심쿵이었다.”

고준은 배우들과의 케미를 위해 리액션과 관계성에 신경을 쓴다. 특히 죽은 보영의 아버지인 심동민으로 나왔던 배우 조재윤과는 케미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다 찍고나서 서로 포옹했다. 변요한의 법정신도 마찬가지다. 진범이 잡히고 변요한의 무죄를 탕탕 알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변요한을 봤다. 배우로서 서로 원하는 순간이었다.

고준은 이번 드라마에서 나왔던 용의자들을 보면 화나는데 참고 일해야 했다. 궁지에 몰린 악인들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비겁한 선택을 계속 했다. 그러니 실제 연기할 때도 화가 났다. 특히 양병무(이태구)와 그 아버지 양흥수(차순배)는 때려주고 싶었을 정도로 싫었다.

고준은 노상철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초반에 ‘공공의 적’의 ‘강철중’ 형사를 살짝 섞었다. ‘베테랑’의 황정민 선배의 유연함도 참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업 경찰을 대변하려고 노력했다. 선배에게는 깍듯하게 대하고 후배에게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는 스타일.

고준은 고정우에게 살인 혐의를 뒤집어씌운 무천경찰서장 현구탁(권해효)의 충직한 부하인 김희도 형사과장(장원영)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희도는) 좀 더 똑똑해야 했다. 무지도 죄악이다. 프로젝트를 잘 모르면 힘들다. 무지하면 공부를 더해야 한다. 능력이 없으니까 몸빵하는 거다. 대부분 그렇게 한다. 그게 제일 편하니까. 그러는 게 열심히 사는 것으로 착각하겠지. 김희도 역의 장원영 씨가 분장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계속 대사를 외우며 몰입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권해효 선배는 전체 대본을 걱정하셨다. 실제 리허설때 입에 안붙는 후배의 대사를 같이 고민했다.”

고준은 변영주 감독 스타일을 따뜻함이라고 정의했다. 호쾌하게 말하는 데, 남들이 편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섬세, 똑똑, 예민, 예리하다. 저희에게는 따뜻한 형이다. 온기가 퍼졌다. 귀속력을 가지게 됐다. 자신에게는 “노상철은 생각보다 능력 있는 형사다”고 말해주었다.

남산 시절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데뷔한 고준은 20년 넘게 수작에 목말라 있었다. 이번 작품은 처음으로 부끄러움이 덜했다고 한다. 고준은 2018년작 ‘미스티’를 생활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여성분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캐빈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 이미지가 저와 연동돼 있다. 모든 역할이 저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이미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

기존 캐릭터 답습은 준비가 덜 된 것으로 보고, 가능한 비켜가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게 너무 많이 나와 힘들다고 했다. “좀 더 리얼하게 하자. 슬픈 걸 슬프게 하지 말고, 가장 웃길 때는 진지하게. 봉준호 감독이 그렇게 연출하더라. 긴장될 때 삑사리를 낸다든지…”

고준은 한때 십자인대를 크게 다쳐 걷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었다. 우울증까지 생겼다. 선생님이 미술을 추천했다. 마침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그림을 그리기는 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이 뉴욕에서 초청을 받아 소호 스트릿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 구상과 추상이 뒤섞인 그림 8점 중 7점이 팔렸다. 이렇게 될지는 몰랐다. 그림은 힐링이 큰 부분이다. “그림 그리기가 우울증 치료에 큰 효과가 있었다. 힘들어도 다 그리고 나면 번뇌에서 빠져나오는 듯 했다.”

한편, 고준은 얼마전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해 1일 4가지 운동(자전거 라이딩, 복싱, 요가, 풀업)을 하고,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미술작업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