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의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민관 대미협력 전담반’(TF)을 본격 가동키로 했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안덕근 장관은 전날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비해 산업 업종별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자동차·배터리 업계 릴레이 간담회를 주재했다. 지난해 기준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이 우리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달하는 주요 업종이다.
간담회에서 업계는 그간 한국 기업이 미국의 첨단 제조산업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현지 부품 공급망을 구축했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미국 경제에 기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앞으로도 미국과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정부가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배터리 업계는 그간 IRA상 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에 조 단위를 투자하며 생산 거점을 빠르게 늘려왔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업계 전반의 불황에도 AMPC는 배터리 업계의 영업익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3분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은 4660억원, SK온은 608억원의 AMPC를 받았다. 두 기업 모두 AMPC를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다. 삼성SDI도 내년부터 AMPC 규모가 본격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 1월 재취임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에 대해 ‘녹색사기’라고 비난하고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이미 전기차 판매세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배터리 기업들이 그동안 미국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은 신 정부에 상당한 협상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CAPA)은 117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또 발표된 투자 계획이 완료되면 2027년에는 635GWh에 이를 전망이다. 통상 1GWh에 1000억원의 투자비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배터리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효과는 60조원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환경 규제 강화와 IRA에 따른 AMPC,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 내 투자를 유도했다면 트럼프 신 정부는 관세 장벽으로 미국 내 투자를 강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AMPC를 폐지할 경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IRA 수혜 규모가 축소되면 배터리 수요가 위축되고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소재 수요도 둔화할 것으로 전망돼 국내 배터리 기업과 함께 미국에 동반 진출한 소재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재집권에도 IRA 전면 폐지는 실현 가능성이 작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폐지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른바 ‘IRA 수혜주’들의 연방 상하원 의원 대부분은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미 공화당 내에서 하원 의원 18명과 의장이 공개적으로 IRA 폐기 반대 의사를 밝힌 상황인 만큼 IRA 전면 폐기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