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1133조’ 은행, 수출기업 ‘트럼프 리스크’ 점검

6대시중銀 기업대출 전체 59%
“자동차·2차전지·철강 등 점검”
우량자산위주 리밸런싱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무역 분쟁 재점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은행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수출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의 기업 대출 포트폴리오에도 리스크가 증대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은행은 부랴부랴 고객 기업들의 실적 변동성을 예측하는 등 리스크 점검에 나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 산업분석팀에서는 내년도 전략수립을 위해 트럼프 경제 통상 정책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군 리스크를 점검할 계획이다. 특히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의 실적 변동성을 면밀히 검토해 사업 전략에 반영할 예정이다.

해당 시중은행 관계자는 “트럼프의 경제 통상 정책 가시화 시 자동차, 2차전지, 철강, 재생에너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군에 대한 리스크를 점검할 예정”이라면서 “대미 수출 환경 변화에 따른 중국, 베트남, 멕시코 진출 국내 기업의 실적 변동 가능성도 점검하고 환율 불확실성에 대한 환 헤지(hedge·위험회피) 등을 사업 전략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미 상무부의 품목별, 산업별 통상정책 모니터링을 통해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수출 감소 리스크에 대비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미국 외 수출시장 다변화 요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금융·비금융 지원제도 강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같은 환경 변화와 달리,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기업대출에 대한 취급을 대폭 늘려놓은 상태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대출에 집중한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경쟁적으로 여신 잔액을 늘려왔다. 6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IBK기업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업 대출은 전체 대출의 59%를 차지하는 1133조6000억원이다. 5년새 1.4배 증가했다.

은행이 우량 기업 위주의 대출로 리스크관리에 나서면, 영세 중소기업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산업리스크는 이미 시장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당장 중견기업 오너 고객들의 기업여신 문의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은행의 경우 위험가중자산(RWA) 관리가 필요하기에 대출을 깐깐하게 취급할 수밖에 없어 우량 자산이나 수익성 중심 자산으로 리밸런싱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건전성이 우려되는 영세 중소기업에는 대출을 내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RWA는 기업이 보유한 금융상품 각각에 위험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한 것으로, 이는 자본건전성 지표로 활용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영향을 미친다. CET1은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수치다. 국내 금융지주는 CET1 비율 13% 이상 유지를 목표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가중치가 낮은 우량 대출자산을 취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대기업 위주의 기업여신 행태가 더욱 강화될 거라고 예측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대출뿐만 아니라 회사채 등 자금조달 방법이 다양한 기업의 경우 시장금리와 대출금리 간의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산업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보면 은행은 우량 대기업 위주의 기업 대출 포트폴리오를 늘려갈 유인은 더 커졌다”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기업여신 관리뿐 아니라 외환 리스크 점검에도 돌입했다. 외화를 많이 보유한 은행은 통상 외화위험자산이 높게 평가돼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 시중은행 실무진은 “위험가중자산 관리를 위해 운용 그룹별로 한도를 부여하고 있으며, 필요시 외화예치금, 외화채권, 외화 스왑 등의 단기 운용자산을 축소하거나, 중장기적으로는 전체 외화표시 자산을 축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정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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