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고 커진 귤’ 무더기로…이상기후가 바꾼 제주 감귤

제주남원농협 감귤거점 APC 조생감귤 출하
폭염·폭우·열대야 등 겹치며 품질 우려 커져
착색 50%미만도 출하…출고량은 늘어날 듯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올해는 폭염으로 열과(갈라지거나 터지는 현상) 피해에 더해 열대야, 폭우까지… 당초 예상했던 생산량인 40만톤(t)보다는 한참 밑으로 떨어질 걸로 보입니다.”

지난 14일 찾은 제주 서귀포 남원농협 감귤거점 산지유통센터(APC). 올해 조생감귤 출하를 위한 분류작업이 한창인 이곳에서 선별라인 끝단에 ‘규격 외’로 분류된 귤들이 컨테이너 벨트를 타고 내려와 바구니에 수북하게 쌓인 모습을 보던 현종호 제주남원농협 유통사업소 과장은 이같이 말했다.

14일 제주 서귀포 남원농협 감귤거점 산지유통센터(APC)에서 감귤 선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공동취재단]


지난해 이곳을 거쳐 유통된 감귤만 1만2320t이다. 통상 규격 외에는 사비과(겉면이 긁힌 흔적이 있는 과일)·기형과 등이 포함되는데 올해는 도 조례상 유통이 어려운 대과(횡경 70㎜ 초과)가 많이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귤 상품은 2S(49㎜ 이상~53㎜ 이하)에서 2L(67㎜ 이상~70㎜ 이하)까지 5단계로 구분된다. 이 중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은 건 달고 한 입에 쏙 들어가는 2S, S, M 등이다. 5단계 기준 밖의 큰 귤은 ‘비상품’으로 분류돼 주스 등 가공용으로 쓰인다. 제값을 받기도 어렵다. 일반 상품이 한 콘테나(20㎏들이 플라스틱 상자)당 3만~4만원대라면, 비상품은 4000원대로 뚝 떨어진다.

이처럼 규격 외가 쏟아져 나온 배경에는 이상기후가 있다. 올해 7~9월 제주 지역의 기상 상황은 ‘역대 최고의 평균 기온’과 ‘최장기간의 폭염 일수’, ‘열대야 일수로 전국 1위’ 등으로 요약된다.

이 기간 평균기온은 28도로 전년(26.7도) 대비 1.3도, 평년(25.2도) 대비 2.8도 높았다. 폭염일수는 21.4일로 전년(6.6일)보다 14.8일 많았고, 열대야도 63.3일로 25.8일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생육기에는 잦은 비가 내리면서 물을 먹고 커진 대과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14일 제주 서귀포 남원농협 감귤거점 산지유통센터(APC)에서 감귤 선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비상품으로 분류된 감귤이 떨어지고 있다. [공동취재단]


현장에선 규격 외뿐만 아니라 출고를 앞둔 귤에서도 대체로 초록빛이 감돌았다. 이 역시 열대야의 영향이 크다. 현장 관계자는 “감귤이 성장·비대하는 시기에 열대야로 일교차가 벌어지지 않아서 충분히 착색되지 못하고 녹색을 유지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면서 “기상이변으로 색깔 발현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녹색을 띠는 귤도 당도 기준만 충족하면 상품용으로 인정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바꾸고 지난달 2일부터 적용했다. 구체적으로 착색도 50% 미만을 미숙과로 보고 출하를 제한했던 조항을 아예 삭제하고, 극조생 감귤의 당도 기준을 8 브릭스(Brix)에서 8.5브릭스로 상향했다.

이런 조례 내용 등을 바탕으로 도는 올해 상품 출하량이 40만8000t으로 전년(39만8000t)보다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지감귤 생산량이 전년보다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작년에는 규제로 인해 출하할 수 없었던 물량이 올해는 시장에 풀리는 만큼 출하량 자체는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잦은 비에 따른 착색 부진, 외관 불량 등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제품들이 출하 물량에 섞이면서 상품 가격은 전반적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14일 제주 서귀포 남원농협 감귤거점 산지유통센터(APC)에서 감귤 선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공동취재단]


그러나 현장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며 ‘금(金)귤’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상품성이 확보된 감귤의 가격대는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APC 관계자는 “지금이 가장 바쁠 시기인데 일감이 없다”면서 “비 예보까지 겹쳐서 농가들에 입고 날짜를 생각하지 말고 미리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도 물건을 달라고 하지만 없어서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격도 뛴 상태다. 지난해 관(3.75㎏)당 5000~6000원대였던 노지감귤 가격이 올해는 7000~7500원 수준으로 올랐고, 당도가 높은 경우 1만~1만2000원까지 가격이 책정된 상태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감귤(상품·10개 기준)의 이달 15일 기준 소매가격은 3982원으로 전년 대비 13.61%, 평년 대비 29.5% 상승했다.

김상엽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유통과장은 전체 수확량 규모와 그에 따른 가격 영향은 11월 말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현재 극조생 출하가 끝나고 조생 출하가 시작되는 과도기적인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생산되는 감귤 사이즈가 2S·M에서 2L로 전반적으로 큰 쪽으로 이동했지만 너무 커져서 비상품이 된 물량과 너무 작아서 비상품이었던 것이 상품이 된 물량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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