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병기의 문화와 역사 ◆
로마의 역사는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관심이 높다. 한·중·일 삼국은 로마사에 관련된 서적이 적지 않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소재로 해 시오노 나나미가 쓴 15권짜리 역사 에세이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다.
로마사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로마가 성장, 발전할 때나 쇠퇴하며 몰락하는 과정 모두 배울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망해가는 과정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것들이 많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검투사 이야기는 로마가 쇠퇴하면서 신분제와 권력관계가 불안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당시 검투사들은 엔터테인먼트 문화로 소비됐지만, 노예에서 검투사로 선발돼 잔혹한 ‘검투 서바이벌’에서 생존하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맹활약…五賢帝·팍스 로마나까지
로마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시오노 나나미가 특히 좋아한 인물로 ‘로마인 이야기’에도 많은 분량이 할애됐다. 대다수 영국 국사책의 첫 페이지는 기원전 55년 로마의 사령관 카이사르에 의해 브리튼 섬이 침공 당한 사실을 다룬다. 뜬구름 잡는 단군왕검 이야기가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우리 국사책과는 다르다. 영국 입장에서는 치욕의 역사지만 ‘리얼리티’를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이사르가 1차 삼두(三頭)정치 시절 통치하던 갈리아 지방을 완전히 정복하는 과정에서 브리튼섬까지 침공하게 되었고, 먼저 그곳에 살던 켈트족 부족은 북방으로 서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로마는 산맥이 있는 북쪽으로는 가지 않아, 이때 이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가 생긴 셈이다.
브리튼은 이후 독일북서부 등지에 있던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을 받은 5세기 중엽 직전까지 400여년에 걸쳐 로마의 지배를 받아 온천탕이 있는 바스(Bath) 등 로마문화가 남아있다. 런던도 템즈강 근처 로마군인들의 군사기지로 사용하던 습지의 요새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도시다.
카이사르는 공화정 체제에서 정치엘리트 집단인 원로원과 협력하지 않고 최고사령관인 ‘임페라토르’와 종신통령으로 독재를 하다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 뒤, 2차 삼두정치에 접어든다. 2차 삼두정치는 BC 43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연합한 정권이다.
카이사르는 후계자로 마케도니아 출신의 이집트 공주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 태어난 카이사리온이 아니라 먼 친척인 옥타비아누스를 지명했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장악한 2차 삼두정치의 거물 안토니우스는 로마인 아내와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했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최후의 경쟁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대파하고 개선했다. 그리고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존칭을 받고 사실상 제1대 황제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속주(屬州·Provincia)를 35개까지 늘렸다. 이집트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후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됐다. 라인강 유역까지 속주를 개설해 이 일대를 국경으로 삼았다. 속주에서 와인, 올리브, 소금 등을 세금으로 거둬들이기 위해 무려 8만5000여km에 이르는 도로망을 건설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유래다.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도시인 ‘아우구스부르크’는 15세기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끈 후 가톨릭과 루터주의 두 종파간에 결성된 종교평화를 규정한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가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이자 로마 2대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가 속주로 삼아 세운 군사기지여서 도시명에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최대 도시인 ‘쾰른’이라는 도시명도 로마 식민지 ‘콜로니아’에서 유래했다. 라인강변에 있는 쾰른시의 정식명칭은 ‘콜로니아 클라우디아 아라 아그리피넨시움’(Colonia Claudia Ara Agrippinensium)으로, 앞단어가 쾰른이 됐다. 클라우디아는 로마 제4대 황제이자 5대 네로 황제의 전임자인 클라디우스 1세를 일컫는다.
로마제국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부터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인 오현제(五賢帝·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인 BC 27년~AD180년, 200여년간 황금기를 구가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절을 맞게 된다.
17대 황제 콤모두스부터 로마는 쇠퇴…막시무스의 ‘글래디에이터1’ 배경
팍스 로마나의 마지막 황제이자 우리에게는 ‘명상록’의 저자로 알려진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17대 황제 콤모두스부터 로마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콤모두스는 2000년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글래디에이터1’에서 호야킨 피닉스가 열연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유능한 장군이었다가 가족을 잃고 검투사가 돼 복수를 다짐하는 막시무스(러셀 크로우)를 끝까지 괴롭혔다.
콤모두스도 초반에는 아버지인 아우렐리우스처럼 명군이었으나, 콜로세움에서 반란군을 진압하다 주동자가 친누나라는 사실을 알고, 흑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신화속 영웅인 헤라클래스의 화신이라고 믿고 잔인한 기행을 펼치며 직접 검투 경기에 참가했다. 검투사 문화는 원래 에트루리아의 장례 의식에서 시작됐지만, 콤모두스 같은 암군들에 의해 경건함은 사라지고 점점 더 잔인해져갔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콤모두스는 192년 32세로 근위대 병사에게 암살당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리차드 해리스)가 아들 코모두스가 아닌 막시무스 장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기로 하자 질투와 분노를 느낀 코모두스가 황제를 살해한다. 왕좌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가족을 죽였다. 노예로 전락하고,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는 사랑하는 가족과 존경하던 황제를 살해한 난폭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글래디에이터2’ 배경은 카라칼라와 게타의 광기와 폭압
영화 ‘글래디에이터2’는 그로부터 무려 24년이 지난 2024년 11월 13일 개봉됐다. 올해 87세로 영국 기사 작위까지 받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속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1편 이후 4년만에 시즌2 대본이 나왔는데, 완성도가 떨어져 미뤄졌다고 했다. 스콧 감독은 화상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기자에게 “대본 책 써봤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은 CF 감독으로 시작해 스티브 잡스 광고도 찍는 등 CF감독으로 승승장구하다 40세에 영화감독을 시작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 ‘듀얼리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연출하며 엄청난 내공을 보여주었다.
속편의 시대적 배경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고 난 16년 후다. 로마의 영웅이자 최고의 검투사였던 ‘막시무스’가 콜로세움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 20여년이 흐른 시점이기도 하다. 쌍둥이 황제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와 게타(조셉 퀸)의 광기와 폭압 아래 시민을 위한 자유로운 나라 ‘로마의 꿈’은 잊혀진 지 오래다.
21대 황제 카라칼라는 처음에는 부친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공동황제로 통치하다 부친 사후 연년생 동생 게타와 공동 황제로 제위에 올랐다.
카라칼라는 민심을 얻기 위해 로마시에 한번에 1600명이 사용 가능한 카라칼라 대욕장을 화강암으로 만들고, 로마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공동 황제인 동생 게타를 죽이는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카라칼라 역의 프레드 헤킨저는 “저와 게타와의 콤비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면서도 엄청나게 경쟁한다. 콤비 연기를 하면서도 나만의 독립성을 가지고 싶었다. 어깨에 원숭이를 올린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시즌2의 주인공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로마 시민에 충성하는 로마의 정복 영웅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이 이끄는 로마군에 대패한 후 여친인 아리샷 등 모든 것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다.
루시우스는 강한 권력욕을 지닌 검투사들의 주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의 눈에 띄어 검투사로 발탁된다. 루시우스는 로마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타고난 투사의 기질로 콜로세움에 입성해 결투를 거듭하며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출생의 비밀을 루시우스에게 심어놓았을 줄이야. 1편에서는 배우 생활을 시작할 즈음 출연한 코니 닐슨(루실라 역)이 이번에도 매우 중요하면서도 노련한 연기를 펼친다.
이처럼 ‘글래디에이터2’는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운명을 건 결투를 벌이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권력을 위해 싸우지 않고, 자유를 찾아 싸우는 루시우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서로마의 멸망과정에서 배울 것
카라칼라 황제부터는 로마제국이 급속하게 쇠퇴한다. 여장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황제, 마마보이 황제 등 보고 배울 게 하나 없는 황제들이 속속 나와 로마의 황제 권위를 추락시켰다.
이럴 때는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잡으려고 한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른바 군인황제의 등장. 50년간 지속된 군인황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로마제국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고, 자유농민이 몰락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로마중산층인 농민은 대거 몰락했다. 왕권이 급속도로 약화되면서 귀족들이 세금과 후원금을 내지 않으려고 했다. 인구도 감소했다. 국방력이 약화됐다. 군인 자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족인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활용해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르만족은 로마 입장에서 볼때 ‘야만족’이란 의미로 통칭된다. 고트족, 반달족, 앵글로색슨족, 프랑크족 등이다. 한족(漢族)의 중국이 주변국을 오랑캐로 바라보는 것과 유사하다. 서로마는 결국 이들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힘이 약해져 476년 결국 멸망했다.
그리스 시대가 도시국가라면 로마는 대륙국가다. 그리스가 명상적이며 심미감을 활용해 철학(학문)과 미술(예술)을 발전시켰다면, 로마제국은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법률과 토목, 건축 등에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로마 검투사들이 등장하는 ‘글래디에이터2’에도 스펙타클이 넘친다.
로마의 영광을 상징하는 5000명 수용 가능한 콜로세움(Colosseum·원형경기장) 세트를 만들어 검투사 액션을 보여주고,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압도적인 규모의 모의해상전투(나우마키아)를 재현하는 등 획기적인 시도로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라고 한다. 살라미스 해전을 재현해 배와 배가 붙는 신에서 배로 적의 배의 한쪽 노를 모두 부셔버리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다.
스콧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실물 크기의 60% 축소판 세트를 지은 후, 그 안에 물을 채워 배를 띄웠는데,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상하수도 시설을 잘 정비해 놓은 로마 역사를 고증하면서 굉장한 볼거리(스펙타클)도 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