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 활성화法 재추진, 비이자이익 확대 물꼬트나

신탁이익 감소 우려 은행들 ‘반색’
종합 재산·생활관리 소비자 편익 ↑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업계의 숙원인 신탁업 활성화 법안을 의원 입법을 통해 다시 추진하면서 비이자이익 개선을 위해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활로를 찾던 은행들이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신탁업 혁신 법안 재발의…당국 “입법화 노력에 최선”=19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최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신탁제도 혁신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금융당국이 신탁업 활성화 방안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발의된 법안은 금전·증권·동산 등 7가지로 한정된 신탁가능재산의 범위에 ‘채무’와 ‘담보권’을 포함해 주택담보대출을 낀 주택도 신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객의 상황에 맞춘 신탁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병원이나 법무·회계·세무·특허법인 등 전문기관에 대한 신탁업무 위탁을 허용해 치매·요양신탁(병원), 펫신탁(동물병원), 유언대용신탁(법무법인), 지식재산권신탁(특허법인) 등 금융-비금융 협업을 통해 다양하고 전문화된 신탁 상품을 출시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방향의 신탁업 제도 개선은 금융당국이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다. 2011년과 2017년, 2022년에 신탁업을 혁신하겠다고 발표하고 의원 입법 등을 통해 국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무산됐다. 직전 21대 국회에선 김희곤 전 국민의힘 의원이 법안을 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치권에서는 법안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크게 없을 것으로 보고, 이르면 다음 달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내년 초 최종 통과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와 비교해 정무위원회 구성이 달라진 만큼, 논의가 길어질 공산도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해묵은 신탁업 혁신 과제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다. 당국 관계자는 “입법화를 위한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려고 한다”며 “소위에서 논의가 잘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이자이익 늘려야 하는 은행 관심…재산관리 플랫폼 활용해 소비자도 ‘윈윈’=금융권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법안을 개정해 신탁업 활성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특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신탁수수료이익에 타격을 입고 향후 ELS 등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까지 이뤄질 수 있는 은행들은 기대가 더 크다. 자산관리 서비스 강화를 통한 비이자이익 확대 사업에 신탁제도 개선이 돌파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올해 4대 은행계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3분기 누적 합산 신탁수수료이익은 9428억원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지주의 신탁수수료이익은 2022년 1조3513억원에서 2023년 1조4133억원으로 늘어났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감소세 전환이 불가피하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도 부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신탁을 종합 재산관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가계 보유 재산을 신탁으로 종합적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후견·세무·법률 서비스도 함께 제공해 고령화 시대 종합 생활관리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신탁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인 일본에서는 2000년대 신탁제도 개선을 통해 조부모의 손자녀 교육자금 증여신탁, 결혼·양육자금 증여신탁, 치매신탁, 1인신탁 등 다양한 특화 상품이 등장했다. 기존 상품에 요양 등 고령자 특화 서비스가 추가되는 등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는 추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령화 속도를 생각할 때 치매인구 증가, 노후케어 비용 및 자산 보호, 가족구조 다변화로 인한 상속 및 1인가구 증대에 따른 셀프 부양 확대 등으로 신탁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다”며 “법 개정이 완료되면 종합재산관리는 물론, 치매인구, 장애인, 미성년 등 취약계층의 재산 보호를 위한 신탁업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일본처럼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다양한 상품들이 나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며 “금융권에서도 고객 유치를 위한 신사업으로 신탁 비즈니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신탁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간 신탁 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이 없어 대중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개정부터 해결한 뒤 검토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모습이다. 당국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된 뒤에 세제당국과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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