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 검토에 시간 필요…“내부규정 강화 선행 必”
사실상 이중규제 의견도…‘옥상옥 규제’ 우려
[헤럴드경제=노아름 기자]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키고, 시장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던 인수·합병(M&A) 제도가 개선된다. 이에 따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가 이뤄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일 전망이다.
M&A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오는 26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간 대주주만 속속들이 알던 이사회 논의 사항을 향후에는 개인 주주에게도 공개하고,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시장 자율에 맡기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그동안 상장사 M&A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규제가 경직적으로 운영돼 기업의 자율적인 구조개편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특히 ‘공시 강화’ 항목을 두고, 기업에서는 우려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개정안에 따르면 합병의 목적·기대효과·합병가액·합병비율 등 거래조건의 적정성에 의견이 있거나 합병에 반대하는 이사가 있을 경우 그 사유를 ‘이사회 의견서’에 작성 및 공시하게끔 했다.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권한에 맞춘 책임을 더욱 부여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안건 검토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확보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사회 소집통지는 각 기업 이사회규정에 따르는데, 소집 여부를 이사진에 알려야하는 의무 통지기간이 일주일에서 개최 직전 등으로 천차만별이다. 특히 긴급이사회의 경우 개최 하루 전 소집통지가 이뤄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제조업 상장사 이사회 실무담당자 A씨는 “이사회가 착실하게 운영되는 회사에는 분명 실효성 있는 대책이지만 기업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며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소집통지 및 출석 등에 대한 규정을 먼저 강화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이중 규제에 가까워 실무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투자 기업을 관심 있게 살펴본 주주들이라면 기존 공시를 통해서도 중요 정보 파악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사 기업설명회(IR) 실무담당자 B씨는 “현재도 분기보고서나 사업보고서 내 이사회 관련 사항을 공시하면서 사안별로 어떤 사외이사가 반대했는지 공개하고 있다”며 “이에 더해 별도 의견서를 공시하라는 것은 ‘옥상옥 규제’에 가깝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개정안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사회 책임 강화’ 트렌드와 발맞췄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금융당국 의견에 동력을 얻어 상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를 비롯해 주주를 포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 적용을 계기로 이사회 선진화를 기대하는 시선도 시장 일각에 존재한다.
그간 사내·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상정되는 주요 안건마다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잦아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들의 발언과 판단의 주요 근거가 공시를 통해 공개되면, 이사진이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유가증권 상장사 관계자 C씨는 “이사회 의사록은 각 기업의 양식이 수년간 내리 물림되어 재량껏 작성됐던 것이 일반적”이라며 “기업이 각 이사의 발언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공개하는 곳은 드물었는데 앞으로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