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보호무역에 글로벌 총력전 숨가쁜데…한국 기업에 치명타 법안만은 막아야” [비즈360]

주요 기업 사장단 16명 긴급 성명 배경은
“상법 개정안, 정상적 기업경영 활동 위축”
“보호무역주의 강화…골든타임 놓치면 안돼”
“AI·반도체 등 지원 필요…상속세 등 규제 완화도”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 기자]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그룹을 포함한 주요기업 사장단 16명이 직접 나서 긴급 성명을 발표한 것은 상법 개정안으로 정상적인 기업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단체장이 아닌 주요 기업 사장단이 모여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속 글로벌 시장 생존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한국경제와 기업에 치명타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16개 그룹 사장단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긴급 성명을 통해 강조한 것도 “상법 개정 등 규제 입법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법안에 힘써달라”는 것이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최근 들어 16개 그룹 사장단이 공동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었다”며 “그만큼 중차대한 이슈라고 생각하고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기 때문에 공동 성명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성명서를 손에 든 채 줄이어 입장한 사장단은 시종일관 무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상법 개정안이 무분별한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으로 정상적인 기업경영활동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 뜻을 함께 했다. 또, 신성장 동력 발굴을 저해해 기업가치 하락을 유발할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김창범(앞줄 가운데)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과 주요 기업 사장단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긴급성명 발표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차동석 LG 사장, 신현우 한화 사장, 박우동 풍산 부회장,이형희 SK 위원장,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 박승희 삼성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동우 롯데 부회장, 허민회 CJ 사장, (뒷줄 왼쪽부터) 류근찬 HD현대 전무, 홍순기 GS 사장, 안병덕 코오롱 부회장, 이민석 영원무역 사장, 김규영 효성 부회장, 문홍성 두산 사장, 엄태웅 삼양 사장, 김동찬 삼양라운드스퀘어 대표이사 (※ 소속은 참여 그룹명) 임세준 기자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직무수행시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입법 취지는 소액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김 부회장은 성명서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외무역 파고는 높고 올해 상반기 내수 매출은 마이너스, 수출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라며 “그런데 이 시점에서 온 기업이 상법 개정이라는 특정 입법 사안을 놓고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호소해야 하는지, 상법 개정이 그만큼 시급한 것인지(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업 개편 과정에서 합병, 물적분할 등 소수 주주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핀셋접근이 필요하다”며 “종기환자가 있으면 환부에 메스를 대고 제거, 치료해야지 팔다리를 자르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내 기업 전경 [헤럴드DB]


특히, 사장단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상법 개정안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동시에 경제살리기 법안과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요청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모빌리티, 바이오 등 산업 전방위 분야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 때문에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인재와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경제계에서는 ▷현행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CED) 최고 수준의 상속세 완화 ▷해외 투기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한 경영권 방어제도 ‘포이즌 필(기존 주주들에게 싼 가격으로 지분 매수권 부여)’ 도입 ▷법인세 최고세율(24%) 인하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을 통한 인건비 부담 완화 등의 규제개혁을 요구해왔다.

김 부회장은 “상속세제 개편은 오랫동안 묵혀온 과제이고, 요즘은 상속세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60~70%가 (상속세가) 과하게 높다는 의견을 제시한다”며 “상속세 개편안은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제시해 국회서 논의를 시작한 만큼 상법 개정안과 별도로 다뤄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연합]


재계가 강한 우려를 표시한 가운데 향후 국회 내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오는 22일 ‘민생대책 당정협의회’를 열어 관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 대신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내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통한 기업규제 수위를 낮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여의도서 열린 간담회에서 배임죄 완화 가능성을 언급키도 했다.

이 대표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대주주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비정상을 해소하자는 것인데, 실제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대주주는 ‘감옥에 가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있다”며 “검찰이 수시로 웬만한 회사 자료를 갖고 심심하면 내사를 하고 배임죄 등으로 조사해 회사가 망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기업인을 배임죄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즈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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