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가 증가하면서 장기간 지속되던 혼인·출산 기피 현상에 변화가 나타날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엊그제까지 인구소멸을 우려하던 상태에서 그래도 이 나라에 혼인과 출산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명맥을 유지해 나가려나 하는 기대도 생긴다.
가정의 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은 최근 미국에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 대선에서 이민자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지만, 성소수자 문제 또한 심각한 이슈였다. 성소수자 문제가 차별 철폐를 넘어 새로운 트렌드인 것처럼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일반 가정이 갖는 위기의식이 대선 결과에 크게 반영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상당히 많다. 참으로 다양한 유형으로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정의 존립은 위협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혼인, 출산, 가족 등과 관련된 치열한 논란이 있어 왔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논쟁과 더불어 ‘시월드’, ‘처월드’, ‘독박육아’, ‘설거지론’ 등 가정과 관련된 풍자가 셀 수 없이 쏟아지면서, 방송과 SNS를 온통 도배했다. 사실 혼인과 출생아 수가 모두 기록적으로 폭락했던 것도 이즈음이다.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들 논쟁의 핵심은 관습적으로 결혼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그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 데 있다. 가족 전체가 잘되면 행복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나’라는 개인이 이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묻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생각은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구적인 개인주의도 아니고 전통적인 가족주의도 아닌 혼동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최근 수년간 필자는 개인주의라는 서구문화권의 가정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상호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볼 때 확실히 우리나라 부모는 자녀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며, 자녀들은 과다한 지원을 당연시 한다. 서구문화권 가정의 교육비나 주거비가 더 저렴한 것도 아니며, 그들의 가족 관계가 더 냉랭한 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명절이나 가족 생일 등에 대가족이 모이는 것은 우리보다 더 잦고 화기애애해 보이기도 했다.
요즈음 우리는 오히려 명절조차 만남을 기피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아마 서로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에 차이가 많다 보니 가족 간 갈등을 피하려고 가급적 만남을 줄이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주변에서 가족의 균열을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게다가 부모도 자녀로부터, 자녀도 부모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보니 서구권의 동거커플과 같이 혼인부부를 보완하는 대안 모색도 어렵다.
혼인이든 동거이든 두 남녀 간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집단을 형성하는 것 이외에 인류가 이 행성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뚜렷한 대안도 없다. 이렇다 보니 정부도 온갖 지원책에 골몰하는 것이다. 물론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기 위한 각종 경제적, 제도적 개선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수정 개인주의이던지 현대 유교주의이던지 간에 가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혼인, 출산, 양육이 의무적인 업무로 여겨진다면 아무리 업무여건이 개선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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