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참배’ 日정무관, 추도식 후 급히 자리 떠…한국불참에 추도식 30석 비어
전시실서 도시락통 본 유족, 조선인 노동자 열악한 삶에 안타까움 드러내
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이 일었던 일본 정부 차관급 인사가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을 외면하는 추도사를 한 뒤 기자들 질문을 받지 않고 행사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반면 애초 이 추도식에 참석하려 이날 사도섬을 찾은 한국 유족들은 한국 정부 결정에 따라 행사에 불참하는 대신 조선인 노동자들의 당시 삶을 보여주는 전시시설을 찾아 앞선 세대의 아픔과 마주했다.
이날 오후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린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 한국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추도식’이 진행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이날 검은 정장 차림으로 ‘추도사’를 했다.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참석한 그는 하지만 강제노역이나 강제동원 등 ‘강제’라는 단어를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2022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일제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한국은 전날 전격 행사 참가를 보이콧했다.
오후 1시부터 약 40분간 진행된 추도식이 끝나자 한일 양국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둘러싸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 등에 대해 질문했다. 하지만 그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뒷문을 통해 급히 행사장 밖으로 나가 미리 대기한 차를 타고 떠났다.
일본 행사 진행자들은 그를 뒤쫓는 기자들을 팔로 밀쳐내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한일 양국 인사들이 참석하기로 해 총 100석의 좌석이 준비됐다. 한국 측에서는 유족 9명을 비롯해 한국 정부 대표로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 등 외교부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한국 측 불참으로 이날 마련된 100개 좌석 가운데 30석가량은 빈 채로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 측은 전날 불참을 통보하면서 자리를 치워 달라고 요구했으나 일본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유족 9명은 이날 오후 추도식 참석 대신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이 있는 사도광산 옆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시찰했다. 유족들은 건물 2층에 마련된 전시물을 약 10분간 둘러봤다.
한 유족은 ‘연초배급대장’이라고 적힌 전시물 명부의 이름이 가려진 것을 보고 “이것은 왜 이름을 지운 것이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연초 명부는 사도광산 사측이 광부들에게 담배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인데 조선인 동향도 일부 기재됐다.
또 다른 유족은 1935∼1954년 무렵 사도광산에서 사용됐다는 도시락통을 보고는 “하루에 이것 하나를 먹었느냐”고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열악한 삶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향토박물관 일부 구역에 마련된 이 전시시설은 일본 정부가 추도식과 함께 지난 7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약속한 조치다.
그러나 전시물에도 역시 ‘강제’라는 표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별도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