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채권추심’ 늘어나는데…올해 1심 선고 91건 중 실형 18건뿐

지난 5년간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분석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실형 비율 20% 미만
법조계 “형량 강화와 동시에 민사적 제재도 필요”


올해 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91건 중 18건에 불과했다.[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용경·김도윤 기자] 최근 어린 딸을 홀로 키우던 30대 여성이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정부가 불법 채권추심 근절을 위한 범정부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지금껏 불법 추심에 대한 처벌은 미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91건 중 18건에 불과했다.

25일 헤럴드경제가 대법원 법원행정처로부터 회신받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91건 중 징역형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18건(19.8%)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징역형 집행유예는 18건(19.8%), 벌금형은 47건(51.6%), 벌금형 집행유예는 3건(3.3%)으로 나타났다.

현행 채권추심법은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폭행·협박·체포·감금하거나 위계·위력을 사용해 채권추심 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반복적으로 전화하거나 야간에 전화하는 방법 등으로 채무자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해 사생활을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 채무자 또는 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불법 채권추심 행위로 1심에서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올해를 포함해 지난 2020년부터 매년 20%가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징역형 실형은 2020년에 1심 판결 73건 중 2건(2.7%), 2021년에 73건 중 11건(15.1%), 2022년에 46건 중 5건(10.9%), 작년에 72건 중 13건(18.1%)으로 집계됐다. 또한 징역형 집행유예는 2020년에 11건(15.1%), 2021년에 21건(28.8%), 2022년에 5건(10.9%), 작년에 18건(25%)을 기록했다.

반면 채권추심법 위반 혐의 1심 판결 가운데 벌금형이 선고된 건수는 지난 5년간 줄곧 4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 49건(67.1%), 2021년에 32건(43.8%), 2022년에 31건(67.4%), 작년에 30건(41.7%)은 1심에서 모두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부업법 위반 혐의에 관한 1심 판결도 대체로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이 낮았다. 올해 1심 판결 287건 가운데 징역형 실형은 59건(20.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은 각각 142건(49.5%), 81건(28.2%)으로 해당 혐의에 관한 1심 판결 전체 중 약 78%를 차지했다. 작년에도 1심 판결 269건 가운데 실형은 19.7%(53건), 징역형 집행유예가 42.0%(113건), 벌금형이 30.1%(81건)로 나타났다.

불법 추심행위에 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탓에 피해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 센터에 접수된 상담·신고 건수는 1만1875건으로, 7351건을 기록한 지난 2020년 대비 약 62%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찰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 건수는 올해 10월 기준 2789건으로 지난해 1765건 대비 58% 증가했다.

경찰청은 2022년 11월부터 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추진하며 불법대부업 조직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2022년 불법사금융 조직 2073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43억원을 환수했다. 2023년에는 2195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62억원을 환수했다. 올해는 10월까지 3000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169억을 환수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불법 추심행위에 대한 낮은 처벌 형량을 지적하며 실효적 제재를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사적 제재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고문인 백주선 변호사는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불법사채를 하려는 사업자가 여전히 많다”며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약정을 하거나 이를 수수할 경우 해당 약정 자체를 무효로 보고, 원금과 이자를 전부 주지 않아도 되는 식으로 불법사채업자의 경제적 유인을 차단하는 ‘민사적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도 “기본적으로는 형사 처벌을 강화해야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불법 대부업자들이 민사적으로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게 해야만 고율의 이자를 받는 이 같은 불법 추심 행태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채무자들이 빚을 진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법 추심에 대해 적극 신고하고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주는 실무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승우 법무법인 법승 대표변호사는 “불법 추심의 개념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추심 관련 조항을 현재보다 강화할 경우 자칫 채권추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며 “추심 과정에서 발생하는 협박, 스토킹, 야간 방문, 전화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추심이 문제 되는 곳은 대부분 미등록 대부업체”라며 “이들을 범죄단체로 규정해 강력히 처벌하고, 통제된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대부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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