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게 더 행복”…넓게 퍼진 결혼 불행론
‘긴 노동시간에 경력단절까지’ 업무환경 여전히 열악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2015년은 청년들이 ‘결혼’ 자체를 기피하게 된 시점으로 풀이되는 해다. 그 전까진 저출생은 다자녀 기피와 가임기 여성 인구 감소가 견인했지만, 2015년부터 결혼을 피하거나 미루는 현상이 사회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출생아 수 감소를 이끌었다.
청년이 결혼을 하지 않게 된 이유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에 따른 비교 문화, 집값 폭등 등 경제·사회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성별에 따라 원인이 달랐다. 남성의 경우엔 경제적 이유가 다수를 차지했지만, 여성은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단 의견이 많았다. 그 기저엔 여성 경력단절과 피로사회 문제 등이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는 2015년부터 출생아 수 감소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결혼, 출산, 다자녀 기피 현상이 출생아 수 감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요인은 2002∼2015년엔 연평균 1만6000명 이상 출생아 증가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다가 2015∼2018년엔 1만1600명가량 출생아 감소에 기여했다.
이 두 기간 사이 전체 출생아 수의 감소 규모는 연평균 4400명에서 3만7200명으로 약 3만3000명 늘어났다. 감소 요인 대부분인 2만8000명이 결혼 기피(가임기 여성 인구 대비 결혼 건수 감소)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2015년 전까지 출생아 수 감소는 다자녀 기피에 의해 견인됐다. 다자녀기피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만1000명의 출생아 수 감소를 유발했다. 이후에도 출생아 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 규모는 9500명 정도로 결혼 기피에 비해선 미미했다. 가임기 여성 인구 감소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희생과 책임이 따르는 결혼을 더 이상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제29회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발표한 ‘2024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초혼 건수는 14만 9000건으로 2015년(23만 8000건)에 비해 37.2% 급감했다.
초혼 연령은 2015년 남성 32.6살, 여성 30살이던게 지난해 남성 34살, 여성 31.5살로 올랐다. 각각 1.4살, 1.5살 늘었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비교 문화, 집값 폭등 등 사회·경제적인 여러 요인이 기저에 깔렸단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엔 ‘결혼하면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결혼 자체에 대한 비관론이 넓게 퍼졌다.
한반도미래연구원이 최근 리서치업체 엠브레인과 함께 전국 20~4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심층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로 남성은 20.1%가 ‘경제적으로 불안해서’라고 답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힘든 상황 속에서 집값까지 폭등하자 결혼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엔 결혼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란 인식이 생겼다. 여성 17.6%는 결혼을 피하는 이유로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출산을 원하지 않는 이유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남성은 ‘고용상태·직업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13.9%)’며 경제적 이유를 꼽은 반면, 여성은 ‘아이를 낳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13.9%)’고 답했다.
여성을 중심으로 결혼 자체에 대한 비관론이 퍼진 기저엔 경력단절과 피로사회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발표한 ‘서울시 출산·육아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출산·양육 과정에서 어려운 점으로 응답자의 68.4%는 피로 및 수면 부족 등 육체적 곤란을 꼽았다. 가장 많은 응답이다. 두번째가 경력단절(67.4%)이었다.
결혼요인이 출생아 수에 미친 영향/금융부 |
특히 여성 경력단절은 여전히 실존하는 문제다. 긴 노동시간, 높은 업무강도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매우 힘든 구조로 인해 이러한 세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민섭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결혼과 출산 전후 고용률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던 반면 여성의 경우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8년부터 2021년 한국노동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결혼 직후부터 4년까지(단기) 여성의 고용률은 39%, 결혼 5년 후부터 10년까지(장기)는 49.4%까지 차이가 났다. 결혼하기 전에 일하던 여성 10명 중 4명은 결혼 이후 5년 이내에 일을 하지 않았고, 10년 후에는 절반이 일을 하지 않는단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경력단절 문제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출산 5~10년 기준 미국과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과의 고용률 하락 폭을 비교하면 한국은 48.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영국(43.7%), 미국(42.6%), 독일(29.7%), 덴마크(12.5%), 스웨덴(5.2%) 순이었다.
같은 시기 합계 출산율이 한국(0.81명)의 두 배 이상인 덴마크(1.72명)는 2019년 기준 15세 미만 자녀가 한 명 이상 있는 여성의 고용률이 81.7%에 달했다. 이 중 전일제 근무자는가 72.5%로 매우 높은 수준을 차지했다.
동시에 주 37시간 근무 정착과 오후 4시 퇴근, 연간 5주 유급휴가, 5.8%에 불과한 성별 임금 격차(한국은 31.2%) 등 우리나라와는 상반된 근무환경을 갖췄다.
김 부연구위원은 “대학 진학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인적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비해 일·가정양립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 (여성 인력이) 노동시장에서 잘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모성 패널티(출산 이후 여성의 고용률 감소)가 다른 국가들보다 큰 이유는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하고, 결혼 전 소득이 높다”며 “출산하고 일자리를 그만둘 경우 출산 전이나 결혼 전 수준의 임금을 못 받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