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제7차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정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 |
“소수의 비공식 협의체” 감사원 지적에도
4조짜리 예비비 등 ‘보류’ 사업 소소위로
“나눠먹기식 아닌 국민 바람 반영해야”
[헤럴드경제=김진·김해솔 기자] 약 677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 중인 국회가 또 다시 ‘초법적 소(小)소위’ 가동을 앞두고 있다. 법적 근거도, 기록도 없는 소소위의 위법성을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지적하고 나섰지만 어김없이 관행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올해 소소위가 다루게 될 예산 규모는 격화한 여야 정쟁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수 조원대에 달한다.
27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는 조만간 내년도 예산안 감액 심사를 위한 소소위를 가동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국회 예산 심사 기구인 예결특위 소위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보류’ 예산을 논의하기 위해 소위 산하 소소위를 둔다는 개념이지만, 현행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참석자는 여야 간사와 기획재정부 차관을 중심으로 최소 3~5인에 그친다. 적게는 몇 천억원, 많게는 몇 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예산 재배치가 이뤄지는데,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아 ‘밀실’, ‘짬짬이’란 비판을 매년 받는다.
올해 소소위 심사 규모는 예년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이견을 보인 사업 예산이 통째로 ‘무더기’ 보류되면서다. 최대 쟁점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2조8000억원의 감액을 요구하면서 보류된 정부 예비비(4조8000억원)가 꼽힌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전날 증액 심사에 돌입한 예산안등조정소위에서 “(예비비 정부안 중) 3조원 이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1조에서 2조원이라도 삭감해 민생 경제를 살리는데 반드시 불용시키지 말고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가 6조원대로 편성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일부와 의료개혁 예산인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등 육성지원’ 예산(3110억4300만원),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영일만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약 505억원) 등도 소소위에 오른다. 민주당이 전액삭감을 주장한 대통령실·검찰·경찰 등 부처별 특수활동비도 소소위 논의 대상이다. 내년 경북 경주 개최가 확정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여는 데 필요한 1800억원 상당의 예산마저도 보류됐다.
소소위 심사가 비판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고질적인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쪽지 예산’이다. 감사원이 전날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현행법을 위반한 부당지급 예산은 약 2520억원 규모에 달한다. 감사원은 소소위를 “소수만 참석하는 비공식 협의체”라고 지적하며 국회 예산 심사 제도 개선을 이례적으로 주문했다. 지난해 예결특위 위원을 지낸 민주당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양당 간 견해 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현실적으로 (소소위 가동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국민적 바람과 정책 예산을 잘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오는 28일까지 이어질 증액 심사에서 민주당은 ‘이재명 예산’인 지역사랑상품권 외에 재생에너지, 고교무상교육 등 사업 증액을 요구하고 있어 예산안 법정시한(12월2일) 이전 처리에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에서는 “국회 예산심사권을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보복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반면, 민주당에서는 “예산 주도권이 정부로 넘어가는 법정시한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집권여당”이란 말이 나온다. 여야는 간사 간 협상이 불발될 경우 원내대표 간 ‘빅 딜’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