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키즈’ 신동훈 “현대음악, 이해보단 그저 느끼고 즐겨라” [인터뷰]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한 작곡가 베를린필 위촉 ‘밤의 귀의’ 한국 무대에

 

작곡가 신동훈 [이태경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신동훈(41)은 일명 ‘진은숙 키즈’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63)의 제자로 현재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2019년 영국 비평가협회의 ‘젊은 작곡가상’, 2021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받은 그는 “영국에서 매우 존경받는 작곡가”(BBC프롬스 예술감독 데이비드 피카드)로 꼽힌다. 독일 베를린필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스승 진은숙의 길을 착실히 따르는 흔치 않은 커리어다. 내년 1월엔 베를린필이 위촉한 비올라 협주곡의 공연(1월 9~11일)도 앞두고 있고, 같은 달엔 베를린필의 상주음악가인 조성진이 그의 실내악 곡을 연주(1월 19일)한다.

국내에서도 그의 음악 ‘밤의 귀의’가 첼리스트 한재민을 통해 울려 퍼진다. 오는 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BBC프롬스 코리아’의 개막 공연에서다. 베를린필의 ‘아바도 작곡상’을 수상하며 위촉받아 쓰게 된 이 곡은 오스트리아 시인 게오르그 트라클(Georg Trakl)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신동훈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의 암울하고 광기로 가득한 시대상, 그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약한 개인의 투쟁, 그로 인한 절망과 패배감을 녹인 시를 곡으로 담았다”고 말했다.

곡은 ‘쇠락’, ‘트럼펫’, ‘겨울 황혼’, ‘밤’, ‘밤의 귀의’ 등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했다. 각 악장의 제목도 트라클의 시어로 붙였다. 협주곡에서 첼로는 세계(오케스트라)와 투쟁하는 개인을 상징한다. 그는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던 개인이 마지막에 이르러선 밤(죽음 혹은 절망의 메타포)에 귀의한다”고 설명했다. 신동훈의 ‘낭만주의 사조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사실 그의 어릴 적 꿈은 소설가였다. 그는 “음악과 문학은 시간 위에서 직선으로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말한다. ‘젊은 작곡가상’을 받은 ‘카프카의 꿈’ 역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 ‘꿈’의 영향을 받았다. 내년 1월 세계 초연될 비올라 협주곡은 파울 첼란의 시가 영감으로 찾아왔다.

작곡가 신동훈 [롯데문화재단 제공]

신동훈은 그러나 “문학은 어디까지나 영감의 차원일 뿐, 결국 작곡은 음과 리듬, 화성을 다루는 일”이라며 “음악은 화성과 대위, 그 음악적 재료들의 냉철한 구성(작곡)을 통한 ‘나’라는 개인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음악적 첫사랑인 말러와 알반 베르그, 30대 이후에 가르침을 준 바흐, 최근에 공부 중인 슈만과 슈베르트와 같은 선배 작곡가들에게서 배웠다”고 설명이다. 작곡가로 가지는 지침은 “자기 작품에 항상 솔직하라”는 스승 진은숙의 가르침이다.

작곡가 자신을 담아내되, 마지막 음표를 그리고 덧세로줄을 긋고 나면 그는 작곡가로의 역할에도 마침표를 찍는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의 음악은 무수히 많은 연주자들의 것이 된다. “해석은 어디까지나 연주자 고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훌륭한 연주자들과 협업하다 보면, 내가 전혀 의도치 않은 그들의 해석을 통해 되려 작곡가인 내가 내 곡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음악적으로 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대 클래식 작곡가의 길은 쉽지 않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의 그림자를 밟으면서도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넘어 오늘의 관객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동훈은 “클래식 음악은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새 시대의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며 “매 시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 작품들이 창조됐던 것처럼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을 창조하는 점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청중에게도 “(현대음악을) 이해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굳이 모든 예술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고 완전한 이해란 애초에 불가능해요. 대부분의 조성음악은(특히 잘 쓰여진 음악일수록) 시종일관 음과 조성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음악을 감상하는 나의 귀에도 여전히 난해하고 복잡하며 신비롭게 들리니까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의 차원을 넘어 어떤 음악을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현대음악 역시) 중압감을 내려놓고, 그저 듣고 소리를 느끼고 즐기면 돼요. 대부분의 감상자들이 자신들이 좋아한다고 믿는 음악을 들을 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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