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스틸 의원, 연방하원 3선 실패…트란 베트남계 첫 연방의원

미셸 스틸
미셸 스틸 의원[AP자료]

연방 하원에서 3선을 노렸던 한인 미셸 박 스틸 의원(공화)이 고배를 들었다.

스틸 의원은 미 전역에서 가장 치열한 선거구 중 하나로 꼽힌 캘리포니아 45지구에서 민주당의 베트남계 데릭 트란 후보에게 613표차로 뒤져 낙선했다.

스틸 의원은 27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모든 여정이 그렇듯 이번에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끝나는 것”이라고 패배를 승복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틸 의원은 캠페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와 직원,가족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2026년 선거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지난 25일 후보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45지구의 개표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늦게 결과를 확정지었다. 초반에는 스틸 의원이 앞섰지만 우편투표가 집계되면서 트란 후보가 58표차로 따라붙었다. 지난 19일부터는 트란 후보가 앞서기 시작, 끝내 스틸 의원의 뒤집기는 이뤄지지 못했다.

트란(좌)
데릭 트란(왼쪽) 후보가 지난 10월 선거유세를 지원한 하킴 제프리스 연방하원 소수당지도자와 포옹하고 있다.[AP자료]

트란 후보는 리틀 사이공이 있고 베트남을 벗어난 해외지역에서 베트남계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를 대표하는 최초의 베트남계 연방의원이 됐다.

트란 후보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오직 옷가지만 가지고 도망친 난민에서 단 한 세대 만에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며 “이번 승리는 우리 커뮤니티의 정신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부모님은 억압을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이 나라에 오셨고,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 남부 캘리포니아의 많은 사람들의 여정을 반영한다”라고 덧붙였다.

트란 후보는 베트남 난민 부모 사이에서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된 후 베트남을 탈출했지만 배가 전복돼 아내와 자녀를 잃었다. 트란의 아버지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트란의 어머니를 만나 재혼했고, 부부는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45지구는 가든그로브, 웨스트민스터, 파운틴 밸리, 부에나팍, 세리토스 등 오렌지 카운티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17개 도시를 가로 지르는 C자형 선거구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스틸 의원은 2020년 캘리포니아 39지구의 영 김(공화), 워싱턴주 10지구의 마릴린 스트릭랜드(민주)와 함께 하원의원에 당선된 세 명의 한국계 미국인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을 탈출한 선거구의 고령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반공주의 메시지에 의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스틸 의원은 캘리포니아 공화당 의장을 지낸 남편 숀 스틸을 비롯해 오렌지 카운티 공화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막강한 기금을 모금했다. 공화당 조직과 암호화폐 로비, 일론 머스크의 슈퍼 PAC를 비롯한 외부 단체는 스틸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는 45지구의 중요성을 감안해 개빈 뉴섬 가주 지사, 클린턴 전 대통령, 하킴 제프리스 하원 소수당 지도자(D-N.Y.) 등이 몇 주 동안 트란의 선거 유세에 동참한 끝에 승리, 남가주 해안지역에서 공화당을 제치고 우세를 확인했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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