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윤 작가 “해외 독자들이 ‘호랑이’ 발음하면 뿌듯”

美 이민 2세 정체성 혼란이 미술로 이끌어
호랑이·용 소재…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


미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주어지는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차호윤(해너 차) 작가가 28일 오후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독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용을 찾아서’(더 트루스 어바웃 드래건스·The Truth about Dragons)’로 올해 미국의 권위있는 그림책상인 칼데콧 명예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차호윤(미국명 해나 차) 작가가 28일 부산을 찾았다.

차 작가는 국내 첫 국제아동도서전인 제 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개막식부터 본인의 강연과 인터뷰는 물론, 동료 작가들의 강연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는 물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일러스트 미술을 전공한 그는 분명 ‘미국인’ 이지만 한국어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서에 사인하고 있는 차호윤 작가[출협 제공]


그는 “부모님이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민을 오시면서 엄청나게 많은 한국 전래동화 전집을 미국에 가지고 오셨다”며 “그리고 제가 어릴 때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꼭 한 권을 읽어 주셨다”고 유창한 한국어를 가능하게 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생애 동안 한국에 있었던 시간은 토막토막 몇년 밖에 안되지만 그는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두 산 사이의 작은 발(Tiny feet between the mountains) 표지


2019년 그의 작가 데뷔작인 ‘두 산 사이의 작은 발(Tiny feet between the mountains)’은 한국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차 작가는 “호랑이의 다양한 모습을 정말 좋아한다. 김홍도 화백의 ‘송하맹호도’에서는 위협적이고, 민화 ‘까치호랑이’에서는 우스꽝스럽다”면서 “이 두 마리 호랑이에 더해 제가 당시 막 입양한 고양이까지 총 세 마리의 호랑이를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웃었다.

그는 또 “호랑이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때 수업에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나라 호랑이를 멸종시켰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아직 백두산에는 호랑이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관심이 많다. 그리고 외국인 독자들이 제 북토크에 와서 ‘호.랑.이’를 또박또박 발음하는 모습을 보면 내심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더 하우스 비포 폴링 인투 더 씨(The house before falling into the sea)’ 표지


‘더 하우스 비포 폴링 인투 더 씨(The house before falling into the sea)’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성안숙의 이야기에 맞게 그가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6·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을 받아준 집의 아이 ‘경희’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다.

차 작가는 “성안숙 작가님 어머님이 실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라며 “우연이면서 인연인 것이 제 친할머니 역시 당시 부산으로 내려간 피난민이었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서로 반대 입장에서 서 있는 사람으로 만났다”고 설명했다.

미국 출판사와 작업한 이 책에서 그는 ‘엔드 페이퍼’(제일 처음 장과 마지막 장)를 1950년도의 가난한 부산과 2010년대 찬란한 부산으로 꾸몄다. 그는“전쟁의 아픔만 보기보다,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면서 시간은 흐르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언급했다.

그에게 칼데콧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용을 찾아서’에서는 한국인을 넘어 동양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 탐구가 이어졌다.

‘용을 찾아서’ 그림책의 한 장면


이 책에는 인간을 단죄하는 무서운 서양용과 인간에게 복을 물어다 주는 신비한 동양용이 나온다. 사과잼을 만드는 서양 할머니와 국화차를 내려주는 동양 할머니가 각기 아이에게 두 지역의 용을 설명해준다. 아이는 이 두마리 용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할 필요 없이 모두 자기 안에 있음을 배운다.

차 작가는 이 작품의 스토리를 쓴 줄리 렁 작가의 원고를 처음 읽고 나서 울었다고 고백했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저의 어린이 때 모습을 많이 생각하게 됐거든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있지만, 부모님은 한국인이고, 저 역시 생긴 것은 한국인이거든요. 제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자라면서 내성적이 된 면이 있는데, 만약 제가 아이였을 때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됐을까 싶었어요. 앞으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저와 같은 갈등을 많이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그는 지금도 어느 한 쪽의 정체성을 선택하기보다 “불완전한 균형 속에서 살며 그저 해탈했다”고 말한다. 그는 “저는 영원히 이 숙제를 해야 한다. 다만 어릴 때부터 저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한 것이 결국 저를 미술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가장 국제적일 수 있다는 말도 전했다.

“사계절 출판사의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정진호) 그림책은 바나나가 집앞에 배달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뤄요. 배달의 민족인 한국에서 한국인이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미국에 사는 미국인인 저는 생각할 수도 없는 독창적인거죠.”

조만간 그는 ‘차는 사랑이다(Tea is Love)’라는 새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그 다음엔 그가 직접 원고부터 그림까지 직접 참여한 책도 나올 전망이다. 정원을 가꾸는 요정의 갈등과 시련에 대한 이야기다.

“정원은 비유적으로 자기 세계, 자기 작업을 뜻해요. 한 요정이 정원을 열심히 가꾸다가 어느 순간 다른 정원이 눈에 들어와요. 그 정원이 너무 아름답고, 반면 내 정원은 초라해 보여요. 그때부터 그 요정이 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에요. 남의 떡이 더 크다(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는 격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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