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예산 압박 맞은 與 [이런정치]

野 673조 규모 감액안, 예결위 단독 처리
‘정부안 자동 부의’ 무력화 초강도 압박
늘어가는 여야 협상장서 타격 불가피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내년도 감액 예산안 처리를 시도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연말 국민의힘이 거대 야당의 전례 없는 전방위 압박에 부딪혔다.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탄핵안과 국정조사, 특검법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 ‘감액안 단독 처리’라는 초유의 강공을 펼치면서다. ‘정부 예산안 자동 부의(12월1일)’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손에 넣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초유의 野감액안 단독 처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1월29일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는 예산안등조정소위와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고 감액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의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는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은 2024년도 예산안을 심사했던 지난해 말에도 단독 처리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통과된 감액안은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안에서 4조원 이상 삭감된 673조원 규모다. 정부가 4조8000억원을 편성한 예비비에서만 2조4000억원이 삭감됐다. 그 외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검찰·경찰의 특수활동비와 검찰·감사원의 특정업무경비,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영일만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의료개혁 예산인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등 육성지원’ 예산 등에서 대규모 삭감이 이뤄졌다.

여야는 앞서 예결특위 여야 간사 중심의 ‘소(小)소위’에서 내년도 예산안 감액 및 증액 규모를 둘러싼 협상을 진행해 왔다. 통상적으로 예산 정국에서 여야는 서로 원하는 예산을 주고받으며 합의점을 찾는다. 민주당이 ‘이재명 예산’인 지역사랑상품권과 재생에너지, 고교무상교육 등의 증액을 요구하며 예년과 같이 증감액 협상을 이어갈 것이란 낙관적 전망과 달리, 민주당은 “구태와의 작별, 원칙의 회복(허영 예결특위 야당 간사)”이라며 감액안 처리를 강행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오른쪽)가 18일 국회의장실에서 우원식 의장과 만나 회동에 앞서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4.11.18 [공동취재] [연합]


‘정부안 부의’ 막힌 與…“국정마비” 여론전


민주당은 현행법에 따라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로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길 경우, 협상이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일 본회의에서 감액안을 실제로 처리하기보다 ‘압박 카드’로서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례 없는 야당 단독 감액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건 국회의장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도 전례 없는 (정치적) 부담”이라며 감액안의 본회의 통과 가능성을 낮게 봤다. 다만 정부안 자동 부의 가능성이 사라짐에 따라 향후 여야 협상에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는 평가가 짙다. 현재 예산안 외에 예산 부수법안에 오른 ‘가상자산 과세 유예법’ 등 세법 개정안 협상이 예고됐고, 채상병 국정조사, 헌법재판관 후보 추천 등을 둘러싼 협상도 진행 중이다.

민주당에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한 예결특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오로지 민주당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민주당의 예산 행패”라며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 방탄용이자 국정마비용”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민생 예산 삭감 사례를 열거하며 “‘민주당만 빼고’ 우리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했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사 탄핵, 감사원장 탄핵, 특검을 남발하고 결국 정부 필수 예산을 삭감해 나라를 뒤엎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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