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20여명, 얇은 텐트 의지해 겨울나기 시작
역대급 ‘11월 폭설’에 주거환경 급격히 나빠져
용산구 상담반 편성해 노숙촌 주기적 순찰 중
용산역 일대 개발 시작되면 철거 불가피한 상황
지난달 29일 용산역 뒤편에 위치한 노숙인 텐트촌에 눈이 쌓여 있다. 마치 숲속에서 야영을 하는 모습을 방불케 하는데, 이곳에는 갈곳 없는 노숙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김도윤 기자 |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주민은 손이 빨개졌지만 아무렇지 않게 빨래를 했다. 빨간 고무 대야에 담긴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주민의 손이 대야색보다 더 붉어졌다. 손이 시리지 않나, 물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헹군 속옷과 수건을 건져 나뭇가지에 설치해둔 빨랫줄에 걸었다. 마을 입구에는 빈 생수병과 각종 과자봉지, 소주병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역 3번 출구, 이날 아침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시민들은 추위를 피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용산역사와 드래곤시티 호텔 사이를 이어주는 공중보행교 중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숲 사이로 공터가 하나 보인다. 이 공터에는 노숙인 2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일명 ‘용산 노숙인 텐트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얇은 텐트에 의지해 겨울을 시작했다.
“밤에는 추위 때문에 잠들기가 어렵고. 양말 몇 겹을 겹쳐 신고, 이불 둘러매고 간신히 버텨요.”(노숙인 A씨)
이 텐트촌은 2000년대 중반, 노숙인들이 철도 정비창 부지 내 작은 공원을 무단 점거하면서 형성됐다. 하지만 이곳의 텐트들은 추위를 막아줄 벽이나 지붕조차 없는 얇은 비닐로 덮여 있다. 주민들은 추위를 피할 곳으로 텐트 안이나 역 안의 대합실을 찾을 뿐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용산역 대합실로 이동해 몸을 녹이고, 밤이 되면 다시 텐트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용산역 노숙자들은 낮 시간대엔 대합실에서 추위를 피하고 밤이면 다시 텐트촌으로 돌아온다고 답했다. 사진은 용산역 내에 있는 대합실 모습. 김도윤 기자 |
텐트촌 주민 A씨의 텐트 안에는 낡은 침구와 옷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A씨는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한 지도 10년이 됐지만 겨울이 오면 항상 힘들다”며 “낮에는 용산역 대합실로 가 추위를 피하지만, 밤이 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화장실은 어디서 이용하는지 물어보자 용산역 2번 출구 옆에 있는 역내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곳 주민 대부분은 과거 다니던 직장이나 하던 사업이 망해 이곳에 정착했다. B씨는 “97년 외환위기 때 한보그룹의 도산으로 함께 망했다. 어음 500억 원을 갚지 못해 교도소 생활까지 했다”며 “감옥에서 나온 뒤 갈 곳이 없어 결국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싶지만 서류 준비와 절차가 너무 어려워 지원을 포기한 상태다.
C씨 역시 “2007년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며 “직장생활을 하다 돈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됐다. 한때는 고시원에서 생활했지만, 돈이 떨어져 쫓겨났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나마 도움을 주는 곳이 인근 교회라고 했다. 주민 C씨는 “일주일에 다섯 번 교회에서 도시락을 준다”며 “교회에서 이불을 나눠줘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용산역 노숙인들에겐 인근 교회에서 도시락, 이불과 같은 방한용품을 제공한다. 사진은 주민들이 교회에서 받은 방한 용품 모습. 김도윤 기자. |
용산구청에 따르면 이곳 노숙인 텐트촌에는 24동의 텐트에 17명이 거주(10월 말 기준)하고 있다. 구청은 거리 상담반 4명을 상시 배치해 순찰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매주 화요일에는 텐트촌을 직접 방문해 거주민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상담도 한다.
또한 서울시립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센터)는 텐트촌 거주민들에게 임시 주거지원을 하고 있다. 고시원이나 쪽방에 거주할 경우 3개월 동안 집주인에게 월세를 대신 지급해 주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방한용품으로 핫팩, 모자, 내복 등을 제공해 겨울철 추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텐트촌 거주민들은 주소지가 없어 전입신고도 어렵다. 때문에 센터는 이들의 거주 사실을 확인해 임대주택 신청을 지원하고 있다.
용산구청 사회복지과 김은경 주무관은 “임대주택 신청이 바로 승인되는 것이 아니라 길면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임대주택 수량이 제한돼 있어 최종적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텐트촌 부지는 국가철도공단 소유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설 부지 전경. 김도윤 기자. |
한편 서울시는 최근 국토교통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함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을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했다. 개발 예정지는 현재 노숙인 텐트촌이 위치한 코레일 소유의 용산역 뒤편 부지로, 과거 철도 정비창으로 사용됐다. 서울시는 이 용지에 앞으로 100층 랜드마크 빌딩과 50만㎡ 규모 녹지를 만들겠다는 개발계획안을 발표했다.
텐트촌 부지는 국가철도공단 소유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국유지가 편입됨에 따라 공단은 부지를 매각예정”이라며 “사업시행자가 개발 전 관련 사항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 시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용산역 텐트촌에 거주하는 분들이 개발로 인해 쫓겨나게 된다면 오랜 시간 형성된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자원을 잃게 되고 주거 상황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 철거나 외곽으로 이들을 내모는 방식이 아닌 , 임대주택 확대와 제도적 지원을 통해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