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합병 외부평가도 의무화
김병환 금융위원장 |
금융당국이 일반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담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회사법 제도의 근간인 상법으로 제도를 접근하면 경영권 위축, 소송 남발이 잇따를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 기업에 적용되는 상법 대신 2800여 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절충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추후 금융위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주주보호 노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2일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이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상장사가 합병 등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해당 이사회는 ▷합병 등의 목적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해야 한다. 또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면 대주주를 제외한 모회사 주주에게 공모 신주의 20%를 우선 배정해야 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최소한의 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과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상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고 하자 재계가 반대한 상태다. 상법을 개정하면 상장사·비상장사 모두 경영권 위협과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개정 카드를 꺼내 적용 대상을 상장사로 좁히고, 그간 소액주주들의 원성이 컸던 합병, 물적분할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했다. 우선 합병 등 자본거래 시 이사회 의견부터 투명하게 제공해 주주의 이익을 적극 고려하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비계열사간 합병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계열사간 합병 등에 대해서도 가액 산정기준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예고했다. 합병 등의 가액이 일률적인 산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금융위는 “상장법인이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주식가격,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된 공정한 가액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상장사들은 어떤 합병을 하더라도 외부평가기관에 의한 평가·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는 상장 계열사 간 합병할 때 외부평가·공시는 선택사항 수준에 그친다.
아울러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면 거래소가 일반주주 보호노력을 심사하는 기간 제한(5년)도 없앨 계획이다. 기간 제한 없이 상장기업이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해 보호노력을 충분히 이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설명이다. 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