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 재건’ 4년의 꿈…인텔 겔싱어 CEO 전격 사임

‘TSMC 잡겠다’ 기술혁신 나섰지만
대규모 정부 지원에도 실적 추락
美 CEO 1800명 교체 역대 최대



‘반도체 왕국 재건’을 목표로 인텔 지휘봉을 잡았던 팻 겔싱어(63·사진) 최고경영자(CEO)가 4년 만에 사임했다. 겔싱어 외에도 올해 미국 기업 대표가 1800여명 교체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일(현지시간) 인텔은 보도자료를 내고 겔싱어 CEO가 지난 1일부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진스너 부사장과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등을 이끄는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사장을 임시 공동 CEO로 임명했다.

프랭크 예어리 이사회 임시 의장은 “우리는 더욱 슬림하고 민첩한 인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겔싱어 전 CEO가 재임 기간 인텔의 재건을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사임 소식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P 통신과 abc 뉴스 등은 “인텔이 겔싱어 CEO가 사임했다는 놀라운(surprise) 발표를 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사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재건 노력에도 취임 이후 인텔은 계속해서 실적난을 겪어 왔다.

겔싱어 전 CEO는 반도체 업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겔싱어 전 CEO는 18세 무렵인 1979년 엔지니어로 인텔에 입사해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오른 뒤 2009년 회사를 떠났다. 이후 VM웨어 등을 거쳐 2021년 2월 위기에 빠진 인텔을 구하기 위해 CEO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인텔은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개인용컴퓨터(PC) 중앙처리장치(CPU)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왔지만, 모바일 및 인공지능(AI) 등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주력인 CPU 부문에서도 경쟁사인 AMD에 추격을 허용하며 경쟁력을 잃어왔다.

겔싱어 전 CEO는 인텔 복귀 이후 ‘반도체 왕국 재건’을 목표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하고, 삼성전자는 물론,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를 수 년내에 따라 잡겠다고 선언했다.

미 정부로부터 이른바 ‘인텔 지원법’이라고 하는 ‘반도체법’을 만들어 78억65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자금 지원을 끌어냈고, 미국과 전 세계에 걸쳐 대규모 투자를 추진했다.

그러나 10년 이상 손 놓고 있었던 기술 혁신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줄어드는 PC 수요 등으로 가속하는 경쟁 속에 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계속해서 감소했고, 시장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2분기에는 매출과 주당 순이익이 모두 월가 전망치를 밑돌고, 3분기 예상치도 시장 전망치를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는 상장 이후 최대 폭인 하루 26%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다른 경쟁사들의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가운데 인텔 주가는 올해만 해도 약 50% 급락했다.

인텔은 100억달러 비용 절감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정리 해고했다. 또 2024 회계연도 4분기에는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연간 자본 지출도 20% 이상 줄이기로 한 바 있다.

한편 인텔 등 주요 기업 CEO의 사임 소식이 이어진 가운데 올해 미국 기업 대표들의 사임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취업정보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미국 내에서 1800명 이상의 CEO가 퇴사를 발표했다. 이는 이 회사가 2002년부터 CEO 교체를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푸조, 피아트, 지프, 크라이슬러 등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 4위 다국적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는 이달 1일(현지시간) 임기 도중 전격 사임했다. 스텔란티스 이사회는 타바레스의 사임을 곧바로 수락하고, 새 CEO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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