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불확실성에 투심 냉각
국내 주요 반도체 종목을 담은 ‘KRX 반도체지수’가 지난달 2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트럼프 시대 수출 불확실성과 반도체 업황 악화 우려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반도체 업종을 담은 KRX 반도체지수는 지난달 16.02% 하락했다. 거래소가 분류하는 KRX 28개 지수 중 가장 하락폭이 컸다. 2022년 9월 기록한 -18.78%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KRX 반도체 지수는 이날 기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 리노공업, HPSP, 이오테크닉스 등 55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지난 3월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 밸류체인(가치사슬)에 탑승한 SK하이닉스·한미반도체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KRX 지수 중 월 상승률(14.73%) 1위를 기록했다. 지난 7월부터는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7월(-12.61%) ▷8월(-10.9%) ▷9월(-2.7%) ▷10월(-0.54%)을 기록했다.
하락세는 하반기 외국인투자자의 반도체 순매도 영향이다. 외국인은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삼성전자(-16조3463억원), SK하이닉스(-2조5341억원), 한미반도체(-1650억원) 등 반도체 시가총액 1~3위 종목을 19조454억원 팔아치웠다. 외국인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비중은 지난달 29일 51.41%로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7월 56.55%까지 올랐지만 4%포인트 넘게 줄었다.
반도체주를 둘러싼 업황에는 먹구름이 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용량이 급증하면서 업황 회복에 위협이란 분석이다. 아직은 구식 칩 위주 생산이지만 경쟁자의 부상으로 수익성 훼손우려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말 PC용 D램의 1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0.59% 내린 1.35달러다. 지난해 9월(1.30달러) 이후 가장 낮다. 중국산 구형 D램 등이 저렴하게 공급되면서 각 회사들이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사양 반도체 호조에도 범용 반도체에서 시장 점유율 축소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책 불확실성도 발목을 잡는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 수위를 낮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과 PC 등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제품 수요 부진 전망이 나온다. 중국을 비롯한 스마트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들이 연말까지 강한 재고조정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현 주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지만 주요 고객사향 8단·12단 HBM3E 양산, 파운드리 대규모 적자 축소, 레거시 메모리 가격 반등에 대한 우려가 먼저 해소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SK하이닉스에 대해선 재고 조정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을 우려하면서도 “고부가 제품(HBM·DDR5·LPDDR5) 중심의 Mix 개선으로 인해 높은 이익률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유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