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국내 반도체 핵심 연구인력 접근해
中 ‘청두가오전(CHJS)’에 이직 알선
서울경찰청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국내 반도체 핵심 연구 인력들이 중국 현지 반도체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알선한 컨설팅 업체 대표가 구속 송치됐다. 적용 혐의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닌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다.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은 직업안정법이 이번 사건에 적용된 것은 인력 유출을 통한 기술 유출사건의 경우 현행법상 산업기술보호법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법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3일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컨설팅업체 대표 A(64) 씨를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으며, 같은 혐의로 헤드헌팅 대표 2명 및 헤트헌팅 업체 1곳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기술유출 범죄와 관련된 알선업자에게 직업안정법을 적용해 수사·구속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께 한국 노동부에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을 등록하지 않고 국내 반도체 전문 인력들을 중국 현지의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에 알선하고 금전적 대가를 챙긴 혐의를 받는다. 직업안정법상 국외 직업소개사업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불구속 송치된 헤드헌팅 대표 2명은 A씨와 같은 방식으로 국내 반도체 전문인력을 청두가오전에 유출한 혐의가 적용됐다.
직업안정법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등록이 있어야 국외 유료직업소개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가볍다. 직업안정법은 무등록 영업을 한 헤드헌터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처벌 상한이다. 반면 산업기술보호법에서는 중요 기술 유출을 엄격히 처벌하고 실행 전에 예비하거나 음모를 꾸미는 행위까지도 제재한다.
여기에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함께 15억원 이하의 벌금이 병과된다. 산업기술 유출의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직업안정법’을 적용했다. 경찰은 “규제 회피가 용이한 ‘인력 유출’ 방식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현실에서 보다 엄정한 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중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은 삼성전자 상무, SK하이닉스 반도체 부사장 출신인 최모씨가 대표로 있는 중국 회사로 알려졌다. 최씨는 청두가오전을 통해 국가 핵심기술인 삼성전자가 30나노 이하 D램 제조공정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앞서 최씨는 중국에서 4000억원 상당을 투자받아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고 ‘삼성전자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혐의로도 구속됐다가 석방된 바 있다.
과거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A씨는 퇴사 후 국내에 무등록 인력알선업체를 세우고,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반도체 핵심인력들을 불법 영입했다. A씨는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반도체 핵심인력들에게 접근해 ‘고액의 연봉과 주거비, 교통비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하며 청두가오전으로의 이직을 알선했다. A씨는 청두가오전 설립 초기 단계부터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경찰 조사 결과, 청두가오전은 A씨를 비롯한 무등록 국외 유료직업소개업체들을 통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인력 상당수를 지속적으로 영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 인력중개로 청두가오전은 중국 현지에 D램 반도체 연구 및 제조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고 단기간에 시범 웨이퍼까지 생산했다.
경찰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국가핵심기술을 유출·부정사용한 B사 임직원 21명을 송치(구속 3명, 불구속 18명)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 국내 반도체 공정 경력자들에 대한 해외 반도체 회사의 무분별한 구인·구직 공고글이 여과 없이 게시되고 있다”며 “앞으로 기업 대상 예방교육 등 협력활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전문 수사요원들을 투입해 국가핵심기술 등에 대한 첩보 수집 및 단속 활동을 강도 높게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