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증안펀드 언제든 가동…무제한 유동성 공급”

비상계엄 파장 1440원 뚫린 환율
물가 상승, 외환보유액 급감 우려
금융당국 수장들 연쇄 긴급회의
RP 매입 검토해 시장 안정 도모


최상목(왼쪽부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비상계엄 악재를 맞은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2기, 북한 리스크에 더해 국내 정국까지 불안해지면서 국내 시장의 자금이 유출되고 원화 가치가 거센 하방 압력에 직면하는 형국이다. 이미 환율은 이날 새벽 한 때 1440원대를 뚫었다.

환율이 요동치게 되면 국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하향 안정됐던 물가는 수입품 가격을 중심으로 뛰게 되고, 고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달러 매도 개입이 강해지면서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 수 있다. 수입 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영 애로도 예상된다. 이에 금융·외환당국은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4일 금융·통화당국이 비상계엄 해제 직후 정상 운영되는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시중에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한 전액 공급 가능성도 검토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RP 매입 가능성 등 (금융회사 현금 전환 수요 등) 있는 게 있다면 무조건 사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무제한’이라고 센 워딩을 쓴 것”이라며 “유동성 공급 대책은 오늘 장중부터라도 바로 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F4 회의를 통해 주식시장을 포함한 모든 금융·외환시장을 정상 운영하기로 하고, 당분간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범정부 합동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운영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필요시 시장 안정을 위한 모든 조치를 신속 단행하기로 했다.

비상계엄 사태에 4일 코스피 지수는 2% 가까이 하락 출발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2분 현재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1.58포인트(1.66%) 하락한 2,458.52다. 지수는 전장보다 49.34포인트(1.97%) 내린 2,450.76으로 출발해 1%대 후반의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간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13.21포인트(1.91%) 내린 677.59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금융감독원장, 금융공공기관 등 유관기관장 및 금융협회장들과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 등 시장안정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채권시장·자금시장에는 총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와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동해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야간 거래 기준 종가(새벽 2시 기준)는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대비 22.1원 오른 142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지난 3일 1405.5원에 개장한 뒤 1400원대에서 오르내렸으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진 오후 10시 30분부터 빠르게 상승했다.

이날 한 땐 1442.0원까지 급등했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달러가 초강세를 나타냈던 지난 2022년 10월 25일(장 중 고가 1444.2원)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이날 하루 환율의 저점·고점 변동폭은 41.50원에 육박했다.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에서 이기면서부터 1400원대를 넘나드는 높은 수준을 이어왔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 등 우리나라 고유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환율 상방압력을 더했다. 그런데 이번엔 계엄이라는 정치 리스크까지 환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 강달러 현상에 더해 추가적인 원화 약세 요인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환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화와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 엔/달러 환율은 최근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대감에 낮아지는 것과 달리, 원화는 계엄이 만든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옥죄이는 모양새다.

환율이 뛰면 하향 안정되고 있는 물가는 다시 상방 압력을 받는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품 가격 전반이 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2월 이후 고환율로 인한 상방압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금 유출 가능성도 크다. 특히 불안해진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빼면서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외환보유액 측면에서도 우려가 앞선다. 빠르게 뛰는 환율을 억제하기 위한 달러 매도 개입이 늘어나면서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 수 있다. 2022년 달러 초강세 시기엔 6개월간 약 330억달러를 시장에 던져야 했다.

이번엔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외환·금융당국은 비상 회의를 연이어 소집하고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시장 점검과 대응 방안 논의를 위해 임시 회의를 개최했다. 모든 간부가 참석하는 ‘시장 상황 대응 긴급회의’도 이날 소집됐다.

금융감독원도 이날 이복현 원장 주재로 긴급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금융·외환시장 불안 요인에 필요한 시장안정조치가 즉각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경각심을 갖고 만반의 대응 태세를 갖춰 시장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홍태화·정호원·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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