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증시, 3개 시장으로 개편…상장·유지 기준 강화
상장기업수↓·시총 증가↑…양질 기업 위주 재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법, ‘질적 성장’에 있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정부가 상법 개정 대신 상장회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겠다 나선 가운데, 주식 시장의 질적 성장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별 시장 특성을 고려해 증시 개편을 단행한 일본 사례에 비춰볼 때, 상장 조건을 강화해 상장 기업수를 줄이면서도 전체 시가총액을 늘리는 질적 성장이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3일 법무법인 광장 김수연 박사에게 의뢰한 ‘일본 증시 재편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일본은 2013년 1월 아베노믹스 개혁의 일환으로,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증권거래소를 합병해 ‘일본거래소그룹(JPX)’을 발족했다. 당시 도쿄증권거래소에 소속된 ‘제1부·제2부·마더스 시장’과 오사카증권거래소에 속한 ‘JASDAQ 스탠다드·그로스 시장’ 등 5개 시장이 도쿄증권거래소로 편입됐다.
그러나 기업의 특성·실태과 무관하게 시장을 물리적으로 통합한 탓에 제1부 시장에 시가총액 1조 엔(약 9조3000억원) 이상인 기업과 10억엔 (93억2000만원) 수준인 기업이 혼재되는 등 시장 구분이 무색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2019년 4월 말 기준 도쿄증권거래소 전체 상장기업 3634개 중 58.9%에 달하는 2141개 기업이 제1부 시장에 상장됐다. 보고서는 제1부 시장의 상장 장벽이 낮고, 상장폐지 기준도 허술해 ‘최상위 시장’에 적합하지 않은 회사들이 다수 유입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 4월 상장기업별 특성을 고려해 기존 5개 시장을 ‘프라임·스탠다드·그로스’의 3개 시장으로 개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라임 시장은 ‘글로벌 투자자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최상위 시장’이라는 특징에 맞춰 상장·유지 기준을 기존 대비 강화했다. 프라임 시장은 상장 유지 조건으로 ▷유동주식 시가총액 100억 엔(932억 원) 이상, ▷유동주식 비율 35%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신규상장 시 수익 기반 충실의 관점에서 ▷과거 2년간 이익 합계가 25억 엔(233억 원) 이상 또는 ▷매출 100억 엔(932억 원)이면서 ▷시가총액 1000억 엔(9319억6000만원) 이상이라는 기준을 추가했다.
스탠다드 시장은 내수시장으로 ‘투자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유동성과 지배구조 수준을 보유한 기업 시장’으로 규정했다. 그로스 시장은 스타트업 기업을 타겟으로 한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기업 시장’으로 정의했다. 이들 시장도 각 목표를 달성하기에 합당한 상장·유지 기준을 설정했다.
보고서는 상장기준 강화로 신규상장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24년 10월 기준 신규상장은 60개 사인 반면, 상장폐지 회사는 82개로 집계됐다. 2015년 이후 최초로 신규상장 회사와 상장폐지 회사의 수가 역전됐다.
개편 후 상장 회사 수는 감소했지만, 시총 중앙값은 증가해 질적 성장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개편이 시작된 초기인 2022년 7월 대비 2024년 4월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기업수는 186개 감소했다. 시총 1000억엔(9319억6000만원) 이상의 상장기업은 125개사 증가한 반면, 시총 1000억엔 미만임에도 프라임 시장에 상장됐던 311개 기업은 상장 폐지됐거나, 스탠다드·그로스 시장으로 이전 상장됐다.
반면, 같은 기간 프라임 시장 시가총액 중앙값은 573억엔(5340억10000만원)에서 960억엔(8946억8000만원)으로 67.5% 늘어났다. 스탠다드 시장의 시가총액 중앙값도 62억 엔(577억8000만원)에서 82억 엔(764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보고서는 기존에 프라임 시장으로 과도하게 유입된 기업들이 스탠다드·그로스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JPX가 의도한 시장별 질적 성장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증시를 선도하는 프라임 시장이 ‘양질의 기업’ 위주로 개편된 것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 1월 상장유지 요건 미달 기업에 대해 예외적으로 상장유지를 허용했던 조치도 종료했다. 2026년 3월까지 강화된 상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회사의 주식을 감리종목으로 지정한 후 6개월 이내 상장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올 3월 기준, 경과조치 적용 기업은 프라임 시장 71개 사, 스탠다드 시장 154개 사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 기업이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 경영실적 개선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질적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수연 박사는 “시장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밸류업 공시, 지수개발 등 정책을 추진하는 우리의 접근 방법과 차이 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며 “국내 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상장폐지 요건 등을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