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교훈에 발빠른 대처 효과
은행·2금융서도 뱅크런 조짐 없어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로 환율이 급등하는 등 한국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됐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되찾은 모습이다. 특히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며 채권시장이 경색됐던 ‘레고랜드’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우리 국고채 시장은 순매수 상태를 유지 중이다. 은행권에서 특별한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고, 금융권 보안도 공격시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시장 안정 이어가…발빠르게 움직인 금융당국=5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전날기준 국고채 금리는 2.625%를 기록했다. 이는 전날(2.585%)과 비교해서는 4bp(1bp=0.01%포인트) 상승한 수치지만 지난 달 말께 해당 금리가 2.74%까지 상승한 걸 감안하면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비상계엄 이후 국고채 가격의 하락으로 금리가 뛸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상승폭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국고채 시장이 어제 오전까진 순매도였지만 오후에는 순매수로 돌아서 마감된 상태”라며 “외국인 자금 흐름이나 가격 변수가 나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안정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발빠른 대처가 시장의 불안심리를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선포 이후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틀 연속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F4 회의를 열고 시장에 ‘무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금융위는 증시 안정을 위해 10조원 규모의 증안펀드 등 시장안정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밝혔다. 채권·자금시장에 대해서는 총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도 가동한다고 했다. 이들 조치는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성된 것들인데, 현재 증안펀드는 10조원 규모의 기금 거의 전액이, 채안펀드는 약 27조원 규모의 기금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 중이다. 해당 조치는 전날 곧바로 시작됐고 내년 2월 말까지 석 달간 시행된다. 필요시 외화 RP 매입, 국고채 단순매입, 통화안정증권 환매도 충분한 규모로 실시하기로 했다.
또 RP 매입 시 담보증권을 국채와 정부보증채권으로 제한했던 것에서 벗어나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특수채권, 농업금융채권, 수산금융채권, 은행법에 따른 금융채까지 대폭 확대했다.
2년 전 국내 채권시장의 갑작스런 경색을 불러왔던 레고랜드 사태 당시 ‘늑장대응’ 비판을 받았던 금융당국이 이번에는 발빠른 메시지와 함께 긴급 조치를 가동시켰다는 평가다. 2022년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 춘천시 중도동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히며 채권시장 경색이 촉발됐지만, 당시 기재부가 이를 ‘강원도의 일’로 치부하며 사태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뱅크런 없었다…보안 공격도 ‘0건’=불안심리가 증폭되지 않았던 탓인지 은행권 움직임도 차분했다. 금융권은 대규모 뱅크런 사태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한다. 2금융권은 오히려 예수금이 늘어나는 등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구불예금이나 저축성예금에도 큰 변동이 없었다”며 “계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도 “평상시와 같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면 될 거 같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금융전산분야에 대한 해킹 등 보안을 지키기 위해 전산 관련 비상대응체계도 구축했다. 현재 금융보안원은 각 금융사와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해 상시 소통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시도된 해킹이나 디도스 공격 횟수는 ‘0번’인 것으로 확인됐다.
홍승희·문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