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초로 10만 달러 선을 돌파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돼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한국시간 이날 오전 11시 38분께 10만 달러를 찍었고, 정오 기준 상승 폭을 높여 10만1천553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코인 시장을 낙관하는 투자자들의 꿈이 현실이 됐다.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기록했다(블룸버그통신)”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이 4일(현지시간) ‘1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효과로 최근 한 달 동안 40% 상승한 비트코인은 이제 ‘디지털 금’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 이날 오후 9시 40분(서부 시간 오후 6시 40분) 비트코인은 10만달러(약 1억4150만원)선을 ‘터치다운’했다.
2009년 1월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5년, 2017년 11월 사상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한 지 7년 만이다.
지난 1월 미 당국의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에 힘입어 7만3800달러까지 급등했고, 미 대선에서 친가상화폐 정책을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에 힘입어 10만 달러라는 새 역사를 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시절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해 왔다. [AP] |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가치가 ‘0’에 가까운 디지털 자산이었다. 2010년 5월 비트코인을 활용한 첫 거래가 이뤄졌는데,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0.006달러(약 8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허상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전통적인 화폐를 대체할 미래 화폐라는 기대를 받으며 상승해 왔다.
2017년 11월 사상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021년 2월 5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속적인 상승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계속되는 저금리의 영향도 컸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 은행 등 미국 지방은행이 무너지면서 전통 화폐의 대안으로 부각되며 가격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급등에 불을 붙인 건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였다.
2023년 5월 미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비롯해 현물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올해 1월 11개 ETF가 승인되면서 기관투자자 자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3월 비트코인은 7만3천800달러대까지 치솟으며 2년 4개월 만에 최고가를 다시 썼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해제한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돼 있다. 비트코인은 한때 8천800만원대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낙폭을 점차 줄이며 회복했다. [연합] |
비트코인 10만 달러를 열게 한 결정적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다.
지난 3월 7만3800달러대까지 상승했을 때도 10만달러선은 가깝지 않았다. 지난 4월 비트코인 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전후로 기대됐던 급등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 이렇다 할 모멘텀이 없었다. 이에 7만 달러를 넘었던 가격도 8월에는 5만 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이 공약을 추진하면서 10만 달러를 찍었다.
미 대선일이던 지난 5일 오전 7만 달러 아래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이후 한 달간 무려 약 45% 급등했다.
1기 행정부 시절 부정적이었던 트럼프 당선인의 가상화폐에 대한 시각은 이번에는 확 바뀌었다.
현 정부의 규제 강화에 불만을 드러냈던 가상화폐 업계는 이번 대선에서 막대한 선거 자금 기부로 트럼프에 ‘올인’했고, 그는 그런 업계를 적극 끌어안았다.
가상화폐 기업 수장들은 친 가상화폐 인물 등용 등 업계 요구 관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인수팀과 접촉했고, 실제 전진 배치됐다.
가상화폐 친화적인 억만장자 금융자산가 하워드 러트닉 켄터 피츠제럴드 CEO가 상무장관에 지명됐다. [로이터] |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억만장자 금융 자산가인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하워드 러트닉 최고경영자(CEO)를 상무장관으로 지명했고, 가상화폐 도지코인을 띄우는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내정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할 재무부 장관 후보자로는 가상화폐 옹호론자인 헤지펀드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 스콧 베센트를 지명했다.
친(親) 가상화폐 인사로 꼽히는 폴 앳킨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선임됐다. [AFP] |
특히, 10만 달러선을 사상 처음 돌파한 이날은 트럼프 당선인이 차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명한 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이날 비트코인은 지지부진했으나, 트럼프 당선인이 차기 SEC 위원장에 폴 앳킨스(66) 전 SEC 위원을 지명했다는 소식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앳킨스는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기업을 지지하고 있다”며 “그가 의회 인준을 통과하면 규제를 완화하고 위반 시 (관련 기업 등에 현재보다) 낮은 벌금을 부과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역대 처음 가상화폐 정책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백악관 자리 신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 의회에는 친가상화폐 의원이 약 300명 포진한 것으로 알려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트코인이 10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것은 달라진 위상을 나타낸다. 오랜 기간 허상, 사기, 투기 수단 취급을 받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금과 같은 상품으로 격상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이날 “비트코인은 가상이고 디지털이지만, 금과 같다”고 말했다.
[로이터] |
트럼프 2기에서는 비트코인이 국가 준비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준비자산이란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대외 결제를 위해 보유한 자산으로 달러 같은 기축통화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금이 그 역할을 한다.
공화당 신시아 루미스 의원은 미 연방준비제도가 5년에 걸쳐 매년 20만개씩 비트코인 100만개를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이는 비트코인 전체 공급량 2천100만개의 4.8%에 해당한다.
미국은 이미 2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법안은 미국이 최소 20년 동안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저장하면 세계 다른 국가들도 이를 준비자산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총량이 정해져 있는 비트코인이 ‘희소성’에 따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다.
준비 자산이 아니더라도 원유나 희토류처럼 ‘전략비축’ 품목으로 지정해 사들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