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시바 방한 취소…한반도 외교·안보 올스톱 [용산실록]

취임 후 첫 양자 방문하려던 이시바 방한 재검토
키르기 대통령, 32년 만에 방한해 ‘계엄’ 목도
대통령실, 외신 기자들에 “합법적 틀 내 계엄”


4일 발행된 일본 주요 조간신문 1면에 ‘한국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전한 기사들이 실려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며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이후 세계 정상을 비롯해 외빈의 방한 일정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보류됐다. 집권 후반기 주요 7개국(G7) 진입을 목표로 외교를 펼치던 대한민국의 대외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한반도 외교가 ‘시계제로’ 상태로 접어들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내년 1월 방한을 조율했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계획 자체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후 첫 양자 방문 국가로 한국을 선택해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 때 재개된 양국 간 셔틀외교를 계승한다는 의지를 담을 계획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전날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한 계획에 대해 “한국 방문은 아직 무엇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오는 15일부터 이틀간 일한(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방한 예정이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방한 일정 자체를 취소했다. 스가 전 총리는 일한의원연맹 간부들과 함께 방한해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주호영 국회부의장 등과 만나고 윤 대통령과의 면담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최대 외교 성과로 꼽는 한미동맹에도 오점을 남겼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전날 “미국 시민 및 비자 신청자들의 정규 영사 업무 예약을 취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의 2인자이자 한반도 전문가인 커트 캠벨 부장관은 4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위 외교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의 결정에 대해 수위 높은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표현한 것이다.

한미 국방당국이 4~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하려 했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은 연기됐다. NCG는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당시 합의된 것으로, 확장 억제의 실행력 강화를 위한 한미 간 협의체다.

스웨덴의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외교·국방장관과 함께 5∼7일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연기했다. 한-스웨덴 정상회담 일정은 양국 간 합의에 따라 지난 2일 공식 발표됐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 일정으로 만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방한 성과는 무색해졌다.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방한은 2013년 이후 11년 만으로, 이번 자파로프 대통령의 공식 방한 일정에는 내각부실장과 외교부 장관 등 10명의 내각 인사들이 동행했다.

특히 이번 한-키르기스스탄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는 수교 32년 만에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전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다짐했다. 자파로프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아름다운 한국에 초대해 주시고, 한결같이 반갑게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 대한민국 국민과 대통령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회담 당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자파로프 대통령은 예정대로 공식 일정을 마치고 4일 귀국했지만, 키르기스스탄 외교부는 계엄령 발표 직후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정치적 성격의 집회나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5일 참석할 예정이었던 2024 세계신안보포럼 개회식 및 만찬 일정을 취소했다. 이 일정에는 이동렬 국제사이버협력대사가 대참하기로 했다. 독일과 스페인을 방문 중이던 김홍균 1차관은 일정을 축소하고 조기에 귀국길에 올랐고, 이번주 제6차 한-UAE 원자력 협력 고위급 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UAE 출장이 예정돼 있던 강인선 2차관은 일정을 보류했다.

대통령실은 계엄령 선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외신 기자들에게 “국회의원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비상계엄이 해제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은 것은 국회가 동의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합법적인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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