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자영업자 대출 ‘소외’…대기업은 ‘우대’

5대銀 대기업대출 올해 20%성장
우량차주 성장률, 자영업자의 8배
계엄發 고환율에 급전필요 사업자↑
‘건전성’에 대출 막혀 가능규모 급감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이 걸려있다. [연합]


“대출 문의는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사업자 고객에 내줄 수 있는 자금은 없는 상황입니다.”(시중은행 영업점 직원 A씨)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전성 확보에 돌입한 은행들이 대기업을 위주로 한 대출 영업을 점차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은행의 올해 대기업 대출 성장률은 중소기업·개인사업자대출과 비교해 최대 8배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자본 여력이 부족한 사업자의 고심은 깊어진다.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추가적인 자금 수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연초는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유독 높은 시기다. 자금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며 한계에 내몰리는 사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상공인은 외면…대기업 대출 8배 더 늘린 은행=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1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327조104억원으로 지난해 말(319조4936억원)과 비교해 2.35%(7조5168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전체 기업대출이 8.5% 성장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소폭 증가에 그친 셈이다.

이는 은행들이 자영업자와 비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턱을 높인 결과다. 11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3조6343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1년 새 20%(27조2059억원)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대출 성장률(2.35%)과 비교해 8배 이상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가계대출을 포함한 전체 대출군 중에서도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아울러 자영업자를 제외한 중소기업 대출 잔액 성장률도 8.85%(27조5585억원)에 그치며, 대기업 대출 성장세의 절반 수준도 미치지 못했다. 전체 기업대출 중 대기업 차주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17.8%에서 올해 11월 말 19.72%로 증가했다.

주요 시중은행은 2022년을 기점으로 기업대출 영업 강화에 돌입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가계대출 수요가 억제될 경우, 기업대출이 유일한 수익 창출 통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특히 대기업 대출 잔액 증가폭은 2021년 4조736억원에서 2022년 23조8971억원, 2023년 30조1218억원 등으로 빠르게 늘었다.

특히 신용도가 좋은 우량기업 고객을 차지하기 위한 대출 경쟁이 가속화됐다. 거래를 트기 위해 ‘역마진’ 금리를 감수하는 등 출혈경쟁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량 기업고객의 경우 차입 단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확보에 더 공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우량 중견기업을 찾아 거래를 트기 위한 투자가 강화됐다”고 말했다.

▶계엄령發 ‘강달러’ 지속…사업자 자금 공급 난망=문제는 대기업 대출 규모가 늘어나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소외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중 5대 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2050억원가량 줄어들며, 올해 들어 처음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9월과 10월에도 잔액 증가폭이 2000억원대에 그치며, 8월까지 평균 증가액(1조607억원)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11월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 전월에 비해 88%가량 급감했다.

이에 은행권은 연체율 상승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경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비교적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위험 대출 취급이 감소하며, 연체율 하락세도 나타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0.65%로 한 달 만에 0.13%포인트 줄었다.

은행의 순이익 규모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5대 은행의 경우 올해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모두 성장시키며 역대 최고 이자이익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관리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도 여기에 기여했다. 은행이 자금 공급 역할을 외면한 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에 힘쓴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확대되며, 자금 부족을 우려하는 영세 사업자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 3일 달러당 1402.9원에 거래를 마친 원/달러 환율은 4일 최고 144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난 4일 은행 기업대출 현장에서는 상품이나 원자재 등 수입 비중이 높은 사업자들의 대출 및 환전 문의가 유독 늘었다. 그러나 고객 문의에 비해 실제 취급 가능한 대출 규모는 턱없이 적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애초에 대출 취급 한도가 줄어든 데다, 승인 가능 여부도 까다로운 상황”이라며 “통상적인 영업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서는 건전성 관리 방침이 강화되며, 한시적으로 기업대출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은행권은 이같은 비판에 대응하고 사회공헌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합동 맞춤형 소상공인 지원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지원방안에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채무조정 ▷소상공인 컨설팅 ▷보증기관 대출 확대 등 방안이 포함됐다. 다만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은행 자체 대출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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