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저성장 늪’ 더 깊어진다

극도의 정치 불확실성에 투자 차질 불가피
원화 펀더멘털 타격…디스카운트 요인 작용


비상계엄 사태가 탄핵 정국으로 치달으면서 가뜩이나 장기 저성장 위기를 맞은 우리 경제가 정치 리스크에 억눌려 더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에서 내각 총사퇴도 거론되고 있어 국정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극도의 정치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이 투자를 보류할 가능성도 있다.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속보치와 같은 0.1%를 기록하며 ‘제로성장’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단기적 문제가 아니다. 한은은 최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추고,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한은이 추산한 잠재성장률(2%)보다 낮은 수준이 2년 연속 이어지는 것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 장기 저성장에 빠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씨티(1.6%), JP모건·노무라(1.7%), 골드만삭스(1.8%)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도 내년 1%대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를 타개해야 하는 정치는 극도로 불안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 콘트롤타워를 비롯한 내각이 사의를 표했고, 야권에선 윤 대통령 탄핵을 추진 중이다. 내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시작될 무역 관련 협상에 차질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허준영 서강대 교수는 “내년 1월부터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지금 리더십이 불안으로 매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이 투자를 망설일 가능성도 있다. 허 교수는 “기업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불확실성인데, 기업이 일단 ‘두고 보자’는 자세를 취하면서 투자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자금 이탈도 걱정스러운 점이다.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36.10포인트(1.44%) 하락한 2464.00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4090억원을 순매도하며 하락장을 주도했다.

환율도 불안하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7.2원 오른 1410.1원을 기록했다. 환율이 주간거래 종가 기준 1410원대로 올라선 것은 약 2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야간 거래 종가는 이보다도 더 오른 1413.6원을 나타냈다.

원화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중장기적으로 타격 받을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비상계엄 이후 국내 금융시장 영향’ 보고서에서 “향후 정치 불확실성 확대 또는 북한 도발 등 한국 고유의 지정학적 불안이 확대될 때마다 원화의 민감도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뚜렷한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트럼프 당선으로 대외적 불확실성 커졌는데, 계엄선포와 해제 등 대내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환율이 널뛰기 할 것”이라면서 “이후 탄핵소추, 대통령 직무정지, 국무총리의 대리 등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경제 펀더멘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악화된 투자심리를 정상화하는 데는 정치권 대응이 관건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S&P글로벌은 4일(현지시간) 리포트에서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신속한 해제는 신용등급 ‘AA’ 수준의 주권 국가로서는 매우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하룻밤 사이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켰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심리가 정상화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한국 정치권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투자자들이 한국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은은 실물경제 미칠 판단을 예단하긴 이르다고 설명했다. 강창구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이날 “계엄사태가 빠르게 해제되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실물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칠지 판단하긴 성급하다”고 말했다. 홍태화·정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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