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차관 “국방부서 작성 안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계엄군 투입을 지시하며 12·3 비상계엄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계엄사령관은 본인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제1호)를 김 전 장관에게서 받았다며 누가 작성했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과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질의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은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들어와서 국회의 유리창을 깨고 로텐더 홀까지 진입했다”며 “그 행태는 위헌인지, 합법인지 불법인지 답하라”고 김선호 차관에게 추궁했다. 이에 김 차관은 “법리적 측면에서 위헌인지 합법인지 이전에 이러한 계엄에 군 병력이 동원된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를 해 왔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이 “군부대 투입 명령을 했냐”고 묻자 박 총장은 “군부대 투입 명령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누구의 명령으로 헬기가 (국회로) 들어왔나? 계엄사령관이 지시를 안 했는데 어떻게 부대가 왔나”고 따지자 박 총장은 “그걸 제가 정확하게 모르겠다”라고 했다.
조 의원에게 같은 질문을 받은 김선호 차관은 “병력에 대한 투입 지시는 장관께서 하셨다”고 털어놨다.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제1호)도 김용현 전 장관이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총장의 이날 국회 증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를 듣고 바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로 내려갔고 그 자리에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했다. 박 총장은 회의에서 김 전 장관이 지휘관들에게 계엄발령된 것, 모든 군사활동은 장관이 책임진다는 말과 함께 명령불응 시에는 항명죄가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한다’, ‘합참차장을 계엄부사령관, 합참 계엄과는 계엄사령관을 지원하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박 총장은 계엄사령부 사무실을 구성하는 데 골몰했다.
그 사이 육군 특수전사령부 1공수여단과 707특임단, 수도방위사령부 일부 부대, 방첩사령부 대원 등은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으로 투입됐다.
계엄을 직접 대통령에게 건의한 김 장관을 필두로 계엄군 병력이 차출된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곽종근(중장) 사령관이 47기, 수도방위사령부의 이진우(중장) 사령관이 48기다.
실제 병력을 투입한 특전사 제1공수여단 이상현(준장) 여단장은 50기, 3공수여단 김정근(준장) 여단장은 52기, 707특임단 김현태(대령) 단장은 57기로 역시 육사 출신이다.
계엄이 진행됐더라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을 여인형(중장) 방첩사령관은 김 장관의 충암고 10년 후배이며 육사 48기다.
포고령 문안도 김 전 장관에게서 받았다고 밝혔다.
박 총장은 “계엄사령관 임무를 부여받고 십 몇 분 지난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문안을 받았다”며 “문안을 보고 법령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포고령의 위법성에 대한 검토는 했는지, 내용에 동의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본인이) 동의할 수 없는 전문 수준이 김 전 장관에게 법무 검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건의했고 이에 김 전 장관은 “이미 검토가 완료된 사항”이라는 답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포고령 문안이 정확하게 어디서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선호 차관은 “작성 주체는 확인할 수 없다”며 “국방부에서 작성하지 않았다”고만 했다.
한편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하고 면직된 김용현 전 장관은 지난 4일 밤 한 언론사 기자에게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속내를 드러냈다.
육군사관학교 신조탑에 새겨진 사관생도 신조 가운데 하나인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세 번째 항의 일부다.
오상현 기자